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2장 8-9절)

기독교


 

<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2장 8-9절)

일요시사 0 1671

술람미 여인은 고백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왕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한 가운데 멀리 있는 왕의 음성을 들었다. 실제로 왕의 소리가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왕의 음성이 마음 속으로 들리는 듯했다. 왕을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면, 왕의 마음이 실제 음성처럼 마음 속에 울려왔을까? 사랑하는 임이 높은 산도 마치 작은 산을 넘듯이 빨리 달려와 자기 곁에 가까이 와 계신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산을 단숨에 넘어온 왕은 자기 곁에 없었다. 여인은 왕이 마치 노루나 작은 사슴이 그러는 것처럼,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고, 창살 틈으로 자신을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술람미 여인이 왕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참으로 그 애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도 이와 같다. 주님을 애절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볼 때, 가까이 와 계신 주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주님의 음성으로 마음 안에 들리는 것이다. 실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주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 안에 느껴진다. 주님이 실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치 벽 뒤에 숨어계신 듯 느껴진다. 침묵하신 듯 하고, 숨어계신 듯하지만, 늘 가까이 계셔서 마음으로 말씀하시고, 창으로 보고 계신 주님이시다.

 

신명기 30장 11-14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바다 건너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고, 우리 마음에 울리고 있어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주위가 온통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 다윗은 시편 19편 1-4절에서 창조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노래한다. 

 

시편 19편 1-4절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믿음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온 하늘과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소리 없는 소리가 되어 마음에 울리는 것이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모든 창조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울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창조세계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때로는 인생을 통해서도 말씀을 하신다. 믿음의 마음으로 보면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민 와서 8년이 지났을 때다. 젊어서 꽤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떠난 지 근 30년이 다 돼서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다시 다니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나가야만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기 위암과 치매로 양로병원에 잠시 계셨다.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맞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는 집으로 너무 오고 싶어 하셨다. 집으로 모시고 오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좋아했다. 친구를 불러 낮에 와인을 한 병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음주운전으로 걸렸다. 전에도 이력이 있는지라, 사회봉사명령이 떨어지고, 봉사차원에서 밀알선교단과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강제로,, 그렇게 교회에 다시 나가 예배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 방황 끝에 첫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 의자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었고, 마치 어머니의 모태 안에 다시 들어간 듯 말할 수 없는 평강이 바로 찾아왔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불렀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니,, 정말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말씀하셨다. 의사를 그만두고 이민을 온 것도, 심지어 음주운전조차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방법이셨다. 한 순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삶을 인도하셨음을 알게 하셨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상숭배의 땅에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부르신 하나님, 미디안 광야의 가시떨기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이시다. 때와 방법은 달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결같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가시고, 자신을 나타내시고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저주하는 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삼하 16장에 나오는 다윗 왕 이야기다. 다윗의 사랑하는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피난 갈 때의 일이다. 시므이라는 자가 도망가는 다윗 왕 일행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하였다. 그러자 신하 중에 아비새라는 사람이 그의 머리를 베고자 다윗 왕에게 청했으나, 다윗은 허락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만약에 여호와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나를 저주하시는 것이라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주실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느냐?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조차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시므이라는 사람이 옳다는 뜻도 아니고, 압살롬의 반역이 옳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 악한 행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충신을 죽게 한 적이 있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시는 책망의 소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믿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우리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삶이 전능자의 사랑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믿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롬 8:35-39).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우리의 삶 가운데 아주 가까이 와 계시며, 우리를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소리 없는 소리로 울린다.

 

삶 속에 찾아와 계시고, 삶 가운데서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다. 술람미 여인은 고백한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자신의 피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주님이시다. 주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거침없이 달려오셔서 함께 하신다. 험산준령도 주님 앞에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주님 앞에서는 아무리 높은 산도 작은 산에 불과하다. 항상 지긋한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이시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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