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되셨나요?
준비! 되셨나요?
마태복음 21:18-22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열매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과일 중에 하나인 무화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는데,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를 저주하심으로 무화과나무가 마르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뼈대입니다. 보여지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용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한 가지 내용이 덧붙여짐으로 오늘 말씀의 반전을 이룹니다. 그것은 바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럼 무화과가 열매 맺는 그 때는 언제인가? 이스라엘 선교사로 지낸 류모세선교사님의 책 [열린다 성경]의 식물편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무화과 열매는 4월에서 10월까지 맺힌다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한 무화과나무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에 걸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4월에 처음 맺은 열매는 먹을 수는 있지만, 당도나 크기에 있어서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 따버려야 그 다음에 상품가치가 있는 무화과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주인은 어차피 일부러 따줘야 하는 거 나그네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기는 유월절기간으로 4월 정도 됩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찾으신 그 열매는 바로 이런 작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아직 작은 열매조차 맺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죠. 오늘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당시 허례허식만 가득했던 바리새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책망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겉으로 잎이 무성하고, 뭔가 엄청난 준비를 해 온 것 같았는데, 실상은 열매 없는 나무에 불과한 모습, 준비되지 못한 모습에 대한 책망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하는 모든 것 역시 결국에는 주님 만날 그 날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도 “준비! 되셨나요?”입니다.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일평생 준비하는 삶의 과정, 어떻게 잘 준비해나갈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이 땅에 지음 받았습니다. 과실수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열매 맺지 못해 저주를 받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일말의 변호의 이유도 없습니다. 열매 맺기 위한 목적으로 지음 받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이유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이유 역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에 만족하는 신앙, 그건 어제까지의 신앙이고, 오늘부터는 한 걸음 더 올라서야죠. 거저 받은 은혜로 구원의 자리에 섰다는 만족감만 가지고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구원이라는 감격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이 우리 삶의 선한 열매를 통해서 드러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왜 그럴까요? // 성공의 삶을 디자인하라는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떻게’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항상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 잘 보면 세상에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어떻게”, 또 하나는 “왜?”
쉬운 예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있습니다.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어떻게 저 거대한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기겠느냐?”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에 대해 한마디를 합니다.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길래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군대를 모독하는가?” 다른 모든 사람은 “어떻게 싸워?” 그러고 있는데, 다윗은 “왜 내가 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가?” 그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알았습니다. 내가 “왜” 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가?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불러주셨고, 왜 나에게 이러한 일들을 맡기시고, 왜 이런 일들을 하게 하시는가를 아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내가 “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뉴질랜드 광림교회, 이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는가? 그리고 “왜” 이 모든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목적을 깨달아 알고, 이를 위해 한 걸음 전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이 찾으시면 무조건 드려야 합니다. 오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해 저주를 받아 말라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시원치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상품가치도 없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 지식적으로는 정리가 되었지만, 마음에는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 중에 이런 깨달음이 옵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세상적인 기준에서만 판단하고자 하니까 동의가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면 무조건 드려야 한다. 아직 무화과나무가 익어서 따먹을만한 계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수님이 원하시면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동의가 아니라,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