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7 ] 수인번호 503호,,,

기독교


 

[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7 ] 수인번호 503호,,,

일요시사 0 1015

 

 

수인번호 503, 수감된 서울 구치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구속되어 수의를 입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전 대통령인데 설마 구속까지야 되겠나 했었는데, 정말 구속이 되었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좌에 앉아있었던 사람인데, 이제 수의를 입고 수인번호 503호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더욱이 본인은 자신의 결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가면 보통 세 번 운다고 한다. 처음은 수감되기 위해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다. 입고 있던 옷을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벗고 알몸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어려서부터 청와대에서 자랐고, 공주처럼 살아왔던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심이 들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었는데, 발가벗고 간수 앞에 서서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항문검사까지 다 받아야 한다고 하니, 그 모멸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음에는 죄수 복을 입을 때 울음이 나온다고 한다. 자신이 죄수라는 사실에서 오는 박탈감과 상실감, 절망감으로 인해 울음이 북받쳐 나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독방에 갇혀서 혼자 첫 숟갈을 들 때 울음이 나온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감옥 밥이 입에 제대로 들어가겠는가? .

 

박 전 대통령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은 더 울게 될 것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으로서 체면상 대놓고 울지야 못하겠지만, 속으로 몇 번은 더 울게 될 것이다. 평소에 설거지를 해봤나 손빨래를 해봤나... 심지어 해외순방 때도 자기전용 변기 뚜껑을 가지고 갈 정도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자기 식기와 수저는 물론이고, 속옷도 독방 안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으로 직접 빨아야 한다. 변기를 새 것으로 바꾸어주지도 않는다. 삼성동 자택에서도 매일 전용 미용사를 불러서 하던 한 달에 천만 원짜리 올림머리도 이제는 할 수가 없다.

 

감옥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꼭 수의를 입고 철창에 갇혀야 감옥일까아니다. 철창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주님의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님의 동산 밖에서 사는 삶이 바로 감옥이다. 주님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삶이 감옥이다.

 

세상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이 왜 감옥인지, 왜 비참한지를 알 수가 없다. 감옥에서 해방되어 빛과 자유의 세계로 나와 봐야 감옥이 비참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님의 동산에서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세상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1:13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한다. 전에는 어둠을 사랑하고, 어둠 가운데서 마시고 떠들고 노는 것이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었다. 그런데 주님의 동산에 들어와 보니, 어둠이 싫어지게 된다. 주님의 동산에서 살아봐야 주님의 동산이 왜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를 알 수가 있고세상이 왜 비참한 감옥인지를 알 수가 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84:10) 세상에서 왕 노릇 하며 천 일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동산에서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철창 안에 갇혀있는 곳만 감옥이 아니다. 주님의 동산 밖에 있는 세상이 바로 어둠의 세계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동산에서 추방당한 자들의 세계가 바로 감옥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이 어둠의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주님의 동산에서 사는 복된 사람들이다. 어둠의 감옥 같은 세상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을 누리며, 주님의 동산이라는 복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동산에 들어오셔서, 어둠에 둘러싸인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주님의 동산을 가꾸어 가신다. 주님의 동산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영생토록 솟아난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4) 그곳에는 생수의 강이 흐른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7:38)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 죽은 물과 땅이 살아나며, 온갖 열매가 풍성히 열리고( 47:6-12), 꽃이 만발하여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다( 4:16).

 

세상이라는 어둠의 감옥에 갇혀있던 자들이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나고, 어둠의 감옥과도 같았던 삶이 생명과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바뀐다. 주님의 동산은 어둠의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빛의 동산이다. 죽음의 세상 가운데 세워진 생명의 동산이다. 비참한 절망의 세계 가운데 우뚝 선 희망의 동산이다.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기쁨으로 충만한 주님의 동산이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이다. 가난하게 살지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세상의 재벌이나, 왕이나, 대통령보다 훨씬 행복한 인생이다. 설사 고단하고 힘겹게 살지라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동산에서 사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동산에서 나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다시 비참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주님의 동산이란 그 동산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사실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 자기들이 주인행세를 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주님의 동산에서의 복되고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옛 사람이 죽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 순종할 수 있고, 주님의 동산에서 사는 축복도 누릴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세상욕심에 기웃거리고,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지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고 하는 것은 다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수인번호 503,,,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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