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는 사람(1)

기독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는 사람(1)

일요시사 0 1992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는 사람(1)




하나님의 자녀는 존재의 근원을 믿음 안에서 찾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 있는 신앙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갖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믿음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믿음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사람만이 구하게 되고 생명에 대한 갈증이 있게 될 때 예수님을 찾습니다.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은 서로에게 힘든 일입니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은 생수를 약속하시지만, 정작 우리 자신이 목마른 우리의 실존을 부인하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그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더 깊은 부분에서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될 때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을 찾고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서 가게 되십니다. 보통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6일정도가 걸리지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지름길을 이용하게 되면 3일이면 갈릴리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길이였습니다. 그런데 엄격한 바리새인들은 사마리아 인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종교혼합주의에 빠졌다는 이유로 사마리아를 피하여 6일이 걸리는 길을 선택해서 돌아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길을 이용해 사마리아를 들려서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온 세상까지도 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향하여 ‘사마리아’에도 가서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길을 가는 도중에 마침 야곱의 우물이 있어서 잠시 우물곁에서 쉬게 계실 때 수가성에 살고 있는 어느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를 하십니다. 여인이 대답을 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하고 대꾸를 합니다. 이런 현실의 상황에서 물먹은 그릇을 나누어 쓰고 대화를 나누고 교제를 하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내게 마실 것을 달라’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이 그 사람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그가 당신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을 것이오.』라고 하십니다. 이 여인은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시며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온 인류를 위하여 보내신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분이심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중심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터를 소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터인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근본적인 영적인 갈증을 해소합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육적인 갈증만을 생각하고 야곱의 우물을 통해서만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큰 사람이란 말씀이십니까? 야곱은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신 분입니다. 야곱도 바로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고, 야곱의 아들들과 가축들도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이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영적인 깨달음이 없이 육신의 갈증만을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 물을 마셨다는 것은 이 우물물이 이 동네에서는 성분이 제일 좋은 물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일급수와 같은 것이고 야곱도 이 우물보다 더 좋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마리아와 수가성의 사람들은 이 물로도 갈증을 해소하게에 충분한 좋은 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오. 그렇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솟아나,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우물이 될 것이오”라고』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서 나오는 자연수를 단지 다른 그릇으로 떠서 우리에게 먹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약속하신 것은 결코 다시 우물에 물 길러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비록 고통과 악화된 건강 속에 있을지라도, 나의 물질적 필요가 잘 채워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 자녀가 여전히 그런 답답한 삶 속에 거한다고 할지라도, 남편이나 아내의 관계가 어그러진 채로 계속 가야 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게 될 때 이런 모든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주님의 약속의 본질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우리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터가 되셔서 끊임없이 생명수를 공급해 주시는 분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중 한 명이었던 헨리포드에게 ‘얼마의 돈이 더 필요합니까?’라고 묻자,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의 갈증은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영원이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을 가졌다는 것은 무지한 일이고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갈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육체적인 갈증은 물론, 문화적인 갈증, 정신적인 갈증이 있습니다. 물질이나 성공에 갈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권력과 행복에 갈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갈증을 느끼는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갈증을 해소시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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