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얻은 축복의 통로

기독교


 

믿음으로 얻은 축복의 통로

일요시사 0 1616

믿음으로 얻은 축복의 통로

아브라함은 원래 갈대아 우르가 고향이지만 아버지의 이주로 하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셔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축복의 문을 열게 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삶의 자리에서 힘들어하고, 고통하며, 근심하고, 소망이 없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았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떠날 곳을 과감히 떠나는 믿음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말씀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 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하란은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고대 문명에 발상지 중의 한 곳 이였고 더불어 모든 거짓 종교와 우상숭배의 원산지로 우상의 종류가 3천개가 넘는 도시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믿음의 피가 흐르던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많은 갈등과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부름 받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옛 생활을 청산하고 죄악의 생활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해서 예외 없이 거쳐야 되는 과정은 죄의 자리, 우상의 자리를 떠나야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환경과 조건을 바꾸어야 합니다. 축복의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환경과 조건에 앉아 있지 말고 축복의 조건으로 바꿔 앉아야 합니다. 분쟁하는 곳, 불신적인 곳, 세속적인 곳, 탐욕적인 곳을 떠나야 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시하는 곳에서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 믿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 했지만 어느 땅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주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가나안 땅인 것은 알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10부족이 넘는 다른 부족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땅이였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이 받은 사명과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현실과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 사이에 있는 간격을 예배드리면 극복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잘 이기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의 훈련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창12:8절에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는 말씀을 통하여 볼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배를 드렸고 원주민들과의 마찰이 생길 때마다 예배드리며 인내하고 참으며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냈습니다. 예배를 드림을 통해 힘을 얻었고 이러한 아브라함의 표현과 인내는 장막을 옮길 때 마다 계속 되었습니다. 신앙인의 실수는 대항해오는 세력이 강해서라기 보다는 악한 세력에 대항하는 각자의 신앙자세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믿음의 행위는 예배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배를 잘 드리고 나면 영적인 힘이 생기고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이 평안해 지고 기분이 좋아 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약속과 아브라함의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예배를 드리며 그 모든 현실의 차이를 인내하며 극복했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히11:10절에 말씀에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터가 있는 성’은 ‘장막’과는 다릅니다. 당시에 장막은 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임시거처의 텐트와 같은 장막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의 삶과 지위가 최종목적과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경영하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을 사모하면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의 삶을 ‘행인처럼, 나그네처럼, 이방인처럼 살았지만’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실현을 강조하는 릭 매킨리 목사의 저서인 ‘하늘에 속해 이 땅을 사는 삶’ 이라는 책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에서 천국을 보이는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을 택하여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하십니다. 지금 내가 떠나야 할 하란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우리의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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