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섬기는 제단을 생각할 때

기독교


 

우리가 섬기는 제단을 생각할 때

일요시사 0 1417

우리가 섬기는 제단을 생각할 때

에베소서 3장에는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엡3:16절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라고 바울은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의 바램은 에베소 성도들이 강건한 속사람을 가지고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울의 기도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워가시길 원하십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하나님의 화목케 하시는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민족, 인종, 계급, 나이, 성을 초월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도 갈등이 있고 아픔도 있을 수 있지만 공동체가 가장 우선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사랑의 공동체의 갈등과 문제는 나중입니다.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서 믿음의 교회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란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란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다양성 속에서도 성령의 하나됨을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는 교회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이 땅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제단을 생각할 때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교회를 사랑하듯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교회를 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인 성도들을 축복해야 하며 그 축복은 바로 “평강과 형통”입니다. “평강”이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의 평화와 사람과 사람과의 평화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교회와 성도들의 평강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사랑은 곧 성도 사랑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성도들이 한 지체이고 한 지체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간에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은 곧 모든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적으로는 복음적인 가치를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회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영적 권위자가 되기 위한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며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은 개인적인 경건을 지키며 교회의 대립과 분열을 막고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길 힘써야 합니다.

시편133편1절의 말씀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영혼 사랑의 열정이 넘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것은 곧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영혼의 미래를 생각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같이 믿는 것입니다.

영혼 사랑의 외적인 모습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내적인 모습은 사람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진정한 방법은 십자가의 사랑의 완성입니다. 예수께서도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친히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고난을 통한 예수님의 나를 향하신 그 절대적 사랑으로 내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은혜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난을 참아 가며 근신하며 전도하라고 디모데에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안에 감동을 주는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감동은 진리에서 나오고, 거짓이 없는 순수함에서 나오고, 차별이 없는 공정함에서 나옵니다. 예외가 없는 온전함에서 나오고, 부족함이 없는 충만함에서 나오고, 잘못이 없는 의로우심에서 나옵니다.

성경에는 감동을 준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람들을 어렵게 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동을 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자기 부인이 약해지거나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개인적인 신앙도 타락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나 자신에 대한 부인은 사라지고 내 중심이 되고,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내 생각만이 옳고, 내 뜻대로 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하는 종교의 첫 번째 현상은 공동체의 주인이 많아지고 종교 단체에는 성직자가 갑자기 많아지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 16:24절에『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을 볼 때도 기독교는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는 종교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럴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신앙인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자신을 부인하고 다 벗어던지고 하는 일이 성공하고 감동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영혼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시 12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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