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

기독교


 

산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

일요시사 0 1656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때의 시대적 상황은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였습니다. 당시는 네로 황제가 통치하고 있던 때인데 그의 광기는 극에 달해서 네로는 로마의 구도시를 불태우고 그 책임을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는 등 온갖 참혹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핍박가운데서도 성도들에게 소망을 가져 핍박을 이기도록 베드로서신을 통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소망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닥친 핍박과 고난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산소망이란? 말 그대로 “생명있는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부활하심으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새 생명을 주셨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새 생명을 통해서 산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①'참을성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참을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이성을 잃어야 하는 자리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은 큰 재산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③산 소망입니다. 참을성과 이성도 잃지 말아야 하지만 이것은 내세에 관한 것까지는 책임을 져주지는 않습니다. 참을성과 이성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확실하고 영원한 소망의 종교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 셔서 산 소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산 소망을 소유한 성도에게는

첫째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잇게 하십니다.

유업이란 “클레로노미안”이라고 해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현재에서 미래를 살면서 누리는 소유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유업이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프다르톤(썩지 않고)” “아미안톤(더럽지 않고)” “아마란톤(쇠하지 않는)은 원래 ‘다른 색깔로 염색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지상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사람이 가진 세상의 많은 소망들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다 사라지고 부패하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허락하신 이 산 소망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 위해 예비하신 유업은 불변의 유업입니다.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영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산 소망으로 이기며 삽니다.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약속받았기에 이 세상에 살면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시 삶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환란을 기뻐하며 산 소망을 가지고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벧전1:6-7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도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 후의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련이란 말은 그 당시 순금과 가짜 금을 감정할 때 쓰던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왜 시련이 올까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이 “믿다가 타락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고 믿는 것 같았지만 시련이 오니까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산소망을 간직하고 사는 성도는 절대로 주님 앞에서 후퇴하지 않습니다. 잠시 방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주님 안에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됩니다.

온도계와 온도조절기가 있습니다. 온도계는 추울때는 춥다고 표시를 하고 더울때는 덥다고 표시를 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는 추워진다 하면 추위를 더위로 바꿔 놓습니다. 더우면 에어컨이 되고 추우면 히팅이 됩니다. 온도조절만 해놓으면 바꿀수가 있습니다. 이 성향을 가진 사람은 추위도 더위도 극복해 나갑니다.
 
바로 사도바울이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 소망을 가진자는 낙망! 시험과 연단이 와도 그 시험과 연단에 맞추어 잘 이겨 나갑니다. 오히려 시험과 연단이 닥칠 때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소망의 힘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말합니다. 산 소망을 가진 성도의 시련은 결국 나를 유익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의 특징은

① 쉽게 낙망하지 않습니다. ②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③ 불필요한 열등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④ 실패를 발판으로 삼습니다. ⑤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하길 그 많으신 긍휼대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어떤 역경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이것이 고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산 소망의 원천입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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