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는 에바다의 축복

기독교


 

열리는 에바다의 축복

일요시사 0 1775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축복의 문을 여시고 은혜의 문을 여기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질병자들이나 영적으로 병든 환자에게 치료함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치신 이유는

①예수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살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②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③예수님은 죽음과 멸망에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두로와 시돈’을 지나 이방의 도시인 열대지방인 데가볼리 지방을 거쳐서 갈릴리 호수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귀먹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고 '에바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지와 거짓에 빠져 올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신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거나 거짓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올바른 말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이 사람은 죄인중에 죄인이였습니다.

그러므로 맺혀진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하여 졌다는 것은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진실을 말하고 좋은 말을 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바른것을 말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입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언어를 들어보면 그의 인품과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지만 말이 또한 사람을 만듭니다. 그래서 말이 곧 인격입니다.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쓰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고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좋지 않은 말은 사람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 상처를 내고 관계를 닫게 합니다. 치유받지 못한 언어는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치유받지 못한 언어로 인해 언어폭력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삶의 중심된 부분임을 기억하고 행복을 나누는 여러 언어를 연구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언어의 치유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치료받고, 생각을 치료받고, 혀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말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히기도 하고 말을 잘해 영혼이 구원받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고보서3:2절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씀합니다.

부드러운말, 좋은 말, 진리의 말은 실수가 없는 사람의 말입니다. 거짓된 말, 상처되는 말, 소극적인 말은 실수가 많은 사람의 말입니다.

우리는 어눌한 혀, 혹은 굳어진 혀로는 예수님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내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인격적이지 않는 혀로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에바다'란 '열리다'라는 의미이면서 깊은 의미에서는 사단의 세력에 억압되어서 사람의 심령을 짖누르고 있는 상태로 그로 인하여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에 참된 해방을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이 '에바다'의 선언은 사막에서 샘을 만난것과 같은 생명의 부활이요, 축복입니다. 사단의 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의 권능이 우리를 사로잡는 새로운 삶의 세계로 인도하게 되는 축복의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의 귀가 열려졌다고 말씀합니다. 닫힌 것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혀가 맺혀진 것이 풀려졌다고 말합니다. 일생동안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한 그 말이 명백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말할 권리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차단시키고 독방에 가두어 두는 것은 말하고 들을 권리에 대한 박탈이고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 이런 고통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을 만져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안다"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냥 대충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주님은 개인적 관심을 가지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나만의 비밀을 아시고, 내 생각을 아시고 나에게 있는 것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닫힌 인생을 친히 만져주십니다. 막7:33절에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라는 이 예수님의 손길이 얼마나 따뜻한 손길이었을까요?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은 나의 마음과 지친몸을 만져주십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7: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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