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고로 치유하는 교회

기독교


 

사랑의 수고로 치유하는 교회

일요시사 0 1732

엡3:17절에『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단지 지식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지식은 경험으로 더 깊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롬5:5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는 말씀으로 이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도록 부어지는 것처럼 경험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야 하고 좋은 언어의 사용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주는 사랑, 베푸는 사랑,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랑의 수고”라는 말씀의 의미는 ‘상처를 입었다’, ‘고통을 감수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간에도 서로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본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아끼지 말아야 하는 사랑의 수고는

첫째,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높이고 섬기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엡:3:19절에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대해서 깨달으라고 말씀합니다. 넓이, 길이, 높이와 깊이를 알라고 하는 것은 용적률을 구하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탐구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고 합니다. 주님이 초청하는 사람은 ‘모두’입니다.

길이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사랑하시는 길이이고, 그 사랑의 높이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말구유까지 낮아지시는 사랑이고 그 사랑의 깊이는 무한하고 완전하여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높이는 사랑의 수고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하인을 위하여 이와 같은 수고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수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손길이 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치유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둘째, 복음을 전함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 하심으로 한 생명이 귀하고 귀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죄사함을 주셨고, 부활을 통해서 새 생명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의 모임입니다. 모여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교회가 할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구원 시키는 일”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가치 있는 중심의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고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교회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하는지? 에 대하여 아는 방법은 얼마나 성도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함을 받았으면 그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랑의 수고를 통하여 치유에 역사를 일으키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좋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성경에는 좋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 수도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잠언서의 말씀에는 매 장마다 빠짐없이 지혜로운 자와 의인의 언어생활을 강조합니다.

똑같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명기가 있고, 명품이 있습니다. 사람도 명품인생이 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가치가 나타나는 인생 어디를 가도 빛나고 존귀히 여김 받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구별이 됩니다.

약3:2절에 말씀에 “우리가 다 말의 실수가 많으니”라고 합니다. 왜 성경은 “말의 실수”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말은 잘못하면 부부관계가 친구관계가 깨어지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좌절하고 낙심하게 만들고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이 미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언어는 상처받은 사람을 회복시키고 치유하고, 부끄러움 당한 나의 인격이 회복되고, 낙심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소생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좋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 주장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상대방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절제하고 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사랑의 수고입니다. 언어는 곧 마음입니다. 마음이 정결하고 성결하고 깨끗하면 그 입술을 통해 그 언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삶에 가장 나타나야 할 변화중에 하나가 바로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교회가 말은 많으나 사랑의 수고의 말이 없습니다. 말은 능하지만 사랑의 수고가 무능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언제나 매임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모든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창조적 언어, 살리는 언어, 치유의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언어생활을 본받고 예수님의 언어생활 속에 내재해 있는 품성의 본질, 지혜의 본질, 능력의 본질을 본받아 사랑의 수고를 하여야 합니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행복한 교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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