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말씀

기독교


 

감추어진 말씀 <고성환목사>

일요시사 0 1533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시기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에는 열 두 살 이상 된 남자들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이스라엘의 큰 명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당시 유월절에는 다른 때보다도 훨씬 많은 대략 270만명 이상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를 타셨고 마21:7절에 예수님이 입성하시던 당시에 풍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들어가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으로, 혹은 비판자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약점을 찾기 위해 참여하였습니다. 승리에 대열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었고 백성들은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서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많은 무리들에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부터 세 번에 걸쳐 온 인류의 구원사건과 예수님의 고난받으심에 대해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가르치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눅18:34절에는 그 이유를 이 가르침이 감추어져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평소 사용하는 통용어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의도적으로 감추시거나 어렵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감추어진 것은 예수님의 잘못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도 못들은 척하거나, 이해 못하는 척하거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말씀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이나 많은 무리의 문제였습니다.

무엇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일까요?

첫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라는 말씀입니다.

눅18:31절에 말씀에『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예루살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이 왜 감추어진 말씀이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활동하신 장소는 크게 두 곳으로 나타납니다. 한 곳은 공생애 대부분의 시간 동안 활동하신 갈릴리이고, 다른 한 곳은 시간적으로는 짧지만 그 비중과 의미에 있어서는 갈릴리 못지않게 중요한 예루살렘입니다. 갈릴리에서는 주로 병든자를 치유하시고,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기적을 행하셨고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성공이나 축복 혹은 유명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통한 온 인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한 발걸음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도 아들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게 하시길 구한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성공시키거나 높은 자리에 앉게 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온 인류를 위한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사실상 갈릴리는 예수님이 있으시기에 너무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의 환호가 있고, 영광이 있고, 대우가 있고, 따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루살렘을 올라가신 것입니다.

 

둘째로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제자들로부터의 배신과 배반을 받아야 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손의 의해서 세상법정으로 넘겨지게 되고, 그리고 능욕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당할 고난은 제자들도 당할 고난이였습니다. 고난은 예수님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믿음으로 가는 길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7:13-14절에 성경은『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물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소유하는 것 보다 나눠주는 것, 버는 것 보다 쓰는 것, 섬김을 받은 것 보다 섬기는 것, 용서 받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 사랑을 받는것 보다 사랑하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드는 교육의 과정이 고난입니다.

갈보리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절망처럼 보여지는 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과 같은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는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가시기를 결심하셨고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길이 고난의 길이지만 고난을 이기고 승리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벧전4:13절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죽음이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붙잡히시고,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다 제 갈길로 가버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과 로마군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요동하던 세상이 잠잠해지고 평화가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 속에 가두어 놓고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시어 오히려 그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바로 감추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활이 없는 갈보리는 패배에 불과한 갈보리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나리라는 부활의 계시는 신앙의 진리이고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지금도 감추어진 말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드러난 말씀이고, 내 안에서 역사하는 말씀이고, 나의 모든 삶을 움직이는 능력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눅18: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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