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1) -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1) -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일요시사 0 1526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조성민씨의 죽음을 보며

 

“어떤 죽음이건 죽음이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 죽음이란 언젠가는 바로 나에게도 닥칠 죽음이기 때문에 숙연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최진실씨의 죽음에 이어 그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씨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삶과 죽음을 생각해본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내 인생의 화두가 되었던 질문이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을 한 마디로 쉽게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삶과 죽음을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내 앞에서 죽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익사한 어린 소녀, 교통사고로 한창 나이에 죽은 청년, 뇌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장치로 겨우 숨만 유지하다 나무토막처럼 쓰러져간 중년 남자, 출산 중에 과다한 출혈로 갑작스럽게 죽은 젊은 산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죽음을 봤다.

어떤 죽음이건 죽음이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 죽음이란 언젠가는 바로 나에게도 닥칠 죽음이기 때문에 숙연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죽음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삶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르는 사람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을 믿기 전에 나는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초연한 편이었다. 신의 존재와 내세의 삶을 믿지 않았을 때,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차를 폐차시키는 교통사고도 네 번 겪었고, 15년 전에는 급성 알코올성 간염으로 죽음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죽음의 그림자가 눈 앞에 드리워져 있을 때조차도 나는 별 동요가 없었다. 별로가 아니라, 솔직히 전혀 동요가 없었다. “드디어 ‘그 때’가 왔나 보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였었다. 길고 짧고의 차이가 있을 뿐, 죽음은 필연이고, 죽음 후에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허무주의자였던 나는 열심히 살았다. 하루살이처럼 열심히 살았다. 쉴 새 없이 교접하며 날아다니다 하루를 살고 가는 하루살이처럼… 열심히 일하고, 먹고, 마셨다. 지독히도 마셔댔다. 인생을 마시고, 허무를 마시고, 죽음을 마셨다.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허무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니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두려워한다. 내게 삶을 주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면서 까지 내게 영원한 삶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감으로 우러러 본다.

의학적인 죽음의 정의는 심장박동과 호흡운동이 영구히 정지된 상태, 또는 뇌의 모든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상실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상태가 죽음이며,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 있는 것이 생명이다. 신학적으로 육신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의 잠정적 분리일 뿐이다. 따라서 죽음은 현상일뿐, 실존이 아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그 생명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세상에는 살아있어도 영원히 죽은 자가 있고, 죽었어도 영원히 살아있는 자가 있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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