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12) - 황당한 부활이야기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12) - 황당한 부활이야기

일요시사 0 1484

며칠 후면 기독교의 최대명절인 부활절(復活節)이다. 2000여 년 전에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의 아들로서 역시 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이 죽었단다. 신이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가 신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애당초 죽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여야 말이 된다. 죽었다면 신이 될 수가 없고, 정말 신이었다면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은 예수는 무엇이며,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하는 예수는 무엇이란 말인가?

부활은 의혹투성이다. 차라리 영혼은 불멸(不滅)하다고 믿는 게 현실적이다. 그래서 부활을 영혼불멸로 이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부활과 영혼불멸은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부활은 죽은 자들의 몸이 다시 살아나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말하고, 영혼불멸이란 몸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영혼불멸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부활은 받아들이기가 불편하다. 최초의 인간이라고 하는 아담도 언젠가는 그 몸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 부활사상이다. 수 천년 전인지, 수 억년 전인지 알 수도 없는 때에 죽은 자들의 몸도 언젠가는 모두 살아난단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골치(?) 아픈 종교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믿거나, 적당히 믿거나, 아예 믿지 않는 게 편하다. 황당한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이 무협지보다 더 황당하다. 어느 무협지에 장풍(掌風)으로 바다를 가르는 내용이 나오던가? 그러나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바닷물이 갈라졌다. 그것도 양쪽에 물기둥이 서고 바닥이 육지가 되었단다. 또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이 회오리 바람을 타고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신이 천상세계에서 인간세상으로 찾아왔다가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도 하고, 다시 살아나 천상세계로 올라가기도 한다. 기독교는 정말 황당무계한 종교일까?

다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해보자. 예수가 신이라면 신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신은 죽을 수 없다. 죽은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예수였다. 그러면 예수는 인간인가? 그렇다. 예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진 우리와 똑 같은 모습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이었다. 신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천상(天上)의 세계에서 지상(地上) 세계로 찾아오신 분이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신인양성(神人兩性)이라고 한다.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란 뜻이다. 죽은 것은 인간 예수였으며, 다시 살아난 것도 인간 예수였다. 여기에 부활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간의 육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모든 인간의 부활을 확증한 천지창조이래 최대의 사건이다.

그렇지만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의 부활을 처음 안 것은 예수를 따라다니던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이 이 경이로운 사실을 예수의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제자들조차도 이를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게 아니라 믿을 수가 없었다. 예수는 죽기 전에 다시 살아날 것에 관해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이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야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더라도, 수천 년 전에 죽은 자들의 부활은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시신조차 없는 자들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부활은 역시 허구가 아닌가?

씨를 뿌리면 씨는 땅에서 썩지만, 씨에서 새로운 싹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 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 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공동번역성경)

누에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썩지 않을 몸이며, 영광의 몸이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이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다. 아직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부활을 찾아 나설 것을 강력히 권한다. 부활은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반드시 만나야 할 그 무엇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고도 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아도 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을 자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기적들도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일도 아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무한하시지만, 당신은 무능하고 유한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다. 그 복은 부활이며, 영생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원병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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