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15) - 어느 비 오는 날의 초상화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15) - 어느 비 오는 날의 초상화

일요시사 0 1737

“비를 맞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요 며칠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굳어진 마음 위에 떨어지는 비를 맞는다. 빗방울이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때리며 적셔온다. 아직 덜 영근 머리와 굳어진 마음을 때리며 적셔온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마음이 아파온다.


비가 내린다. 온 종일 비가 내린다.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되도록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다.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창 밖의 거리에도, 창 밖을 보고 있는 내 마음에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 해는 유독 비 오는 날이 적었다. 뒤 뜰의 땅이 말라 쩍쩍 갈라져 있던 모습이 떠 오른다. 내 마음도 이처럼 메말라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회심한 후 밤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때가 떠오른다. 30년 만에 불러보는 예수의 이름이었다. 마를 대로 마르고, 갈라질 대로 갈라진 영혼에 은혜가 쏟아졌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년 반 동안을 밤마다 부르짖었다. 은혜의 단 비를 흠뻑 맞으며 부르짖었다. 그 후로는 속이 후련하도록 하는 밤기도를 할 수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에서 소리지르며 기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 내 기도하지만, 마음껏 큰 소리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창시절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임어당이 쓴 글이 떠오른다. 먹구름이 멀리서 밀려오는 날이면 허름한 옷을 입고 들로 나가 비 맞을 준비를 한단다. 비 맞기를 즐기던 그는 늘 부인의 반대에 부딪히곤 했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비 올 것 같은 날씨면 미리 비 맞을 준비를 하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

비를 맞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요 며칠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를 맞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는다. 굳어진 마음 위에 떨어지는 비를 맞는다. 하늘에서 마음으로 떨어지는 비를 맞는다. 빗방울이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때리며 적셔온다. 아직 덜 영근 머리와 굳어진 마음을 때리며 적셔온다. 아픔이 느껴진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마음이 아파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에 옷이 젖어 들고 마음이 젖어온다. 비에 젖고, 아픔으로 젖는다. 아픔 속에서 야릇한 시원함을 느낀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 게 들통이 나서 종아리를 몇 대 맞았다. 매를 맞고 나니 시원했다. 비를 맞고 나니 시원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원하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막상 목사고시를 앞두고는 많이 망설였다. 선교사는 몰라도 목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낯선 곳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지나온 삶을 속죄하며 살고 싶었다. 이것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내 입에서는 이민목회에 대한 열정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로는 선교를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목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작 목사고시를 앞두고는 두려웠다. 신앙이나 인품이나 삶이 목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목사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나 목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러나 결국은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삼 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이제 목사가 되어 나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어떤 목사가 되어 있나 생각해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목사의 모습이 아직은 내게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다시 아파온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아파한다.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목사가 되고 싶었다. 훌륭한 인품과 깊은 덕과 넓은 아량을 갖춘 목사가 되고 싶었다. 진정 사랑할 줄 아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지난 삼 년을 되돌아 본다. 아직 멀었다. 진짜 목사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기도한다. 제발 목사 같은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사실 담임목사라는 자리가 내게는 벅차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자가 맡아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고 있지는 않나 반성해본다.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들어와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방울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쏟아져 내려온다. 쏟아져 내리는 따뜻한 물방울들로 빗물을 씻어내고, 부끄러움을 씻어낸다. 떨어지는 물방울로 마음의 부끄러움을 씻어 낸다. 온 몸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마음에도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잠자리에 든다. 얼마 전 아내가 사준 이불이 포근하게 몸을 감싼다. 아내의 사랑에 감긴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에 푹 잠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은혜의 비를 맞으며 눈을 감는다. 꿈을 꾸며 잠 속으로 들어간다. 천국을 꿈꾸며 잠 속으로 들어간다. 잠 속에서 천국을 꿈꾼다. 모든 부끄러움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안식을 꿈꾼다.

꿈 속에서 꿈을 꾼다. 꿈 속에 비가 내린다. “너는 언제나 진짜 목사가 될래?” 떨어지는 빗방울이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꿈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주님의 핏방울들이 되어 영혼을 때린다. 꿈 속에서도 은혜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꿈을 꾼다. 밤비를 맞으며 꿈을 꾼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원병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