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일요시사 0 4802

눅 18장 15-17절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했던 공통적인 고백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저는 어린 아이입니다. 저는 작은 자입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가 한 고백이 “보소서 나의 집은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집에서 가장 작은 자가 아닙니까?” 사도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심지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열왕기상 3장 7절 말씀에 솔로몬은 왕이 되어서 일천번제를 드릴 때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줄꼬” 하실 때 솔로몬이 한 고백이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그랬을 때 그 마음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요 군주였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걸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왕의 신분을 버리고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고백은 바로 이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설 때 내 인간적인 모든 지위, 명예, 자존심 다 벗어버리고 “저는 작은 아이입니다. 저는 그저 어린 아이입니다” 고백하는 신앙, 이런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나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 첫째로,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갓난아기는 배가 고프면 울음을 터트립니다. 갓난아기 배고파서 우는 거 아시죠?  그 우는 소리가 시끄러운 게 아니고 그렇게 측은하고 사랑스러운 것,  여러분 뭐가 사랑스럽습니까? 엄마 품에 꼭 안겨서 그 엄마를 온전히 신뢰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아기가 엄마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갓난아기가 품에 안겨서는 엄마를 의심어린 눈으로 째려보면서 ‘나를 품에 안은 이 여자가 과연 내가 믿을만한 여자인가?’ ‘내가 울고 투정이라도 부린다면 젖은커녕 매가 날아오지 않을 것인가?’ ‘내가 어느 정도로 울어야 이 젖을 줄 것인가?’ 여러분 이렇게 하는 갓난아이가 있을까요? 만약에 그런 갓난아이가 있다면 무서울 겁니다.

여러분 갓난아이는 그렇지 않아요.  갓난아이는 부모를 신뢰할 때 부분적인 신뢰가 없습니다. 전적으로 조금의 의심이나 계산 없이 믿고 신뢰하는 것, 그냥 자신을 맡기는 것, 그러니까 세상이 무너져도 엄마 품에만 안기면 아이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소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 이래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회만 오면, 예배만 오면 그냥 아버지 품에 자신을 내어 맡김이 있을 때  거기에 진정한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배 시간은 그냥 종교적인 의식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넓고 크신 사랑의 품에 안기는 시간이란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갓난아기가 엄마의 그 품에 안기듯 그렇게 안기시길 바랍니다.

2. 어떻게 어린 아이를 양육할 것인가?
또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주시는 귀한 교훈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어떻게 이 어린 아이, 다시 말해 우리의 자녀를 성공적으로 신앙적으로 키울 것인가?”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가 믿음으로 잘 자라고 신앙이 성공적으로 자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1) 무엇보다 주님의 만져주심이 있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져주심은 다름 아닌 안수 기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 주어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겠습니까?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이 그들을 만져주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야 거기에 치유가 있고 우리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야 하나님을 깨닫고 우리 주님이 그들의 심령을 만져주셔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시선으로 어린 아이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면 제자들이 굉장히 머쓱해지고 무안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린 아기의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께 와서 안수 기도를 받으려고 할 때, 제자들은 그들을 그냥 막은 정도가 아니라, 말씀 보면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하찮고 보잘것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16절 보니까 “제자들이 그렇게 꾸짖어 내 쫓은 그들을 다시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심”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엄청난 말씀을 16절 끝에서 하시죠.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어린 아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완벽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제자들과 당시의 사람들이 바라본 어린 아이와 예수님이 바라본 어린 아이 사이에 어마어마한 간격이 느껴지십니까?  한쪽은 어린 아이를 볼 때 아주 미성숙하고 열등하고 가치 없고 쓸모없는 존재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반면 한쪽은 똑같은 어린 아이를 존재를 구원의 반열에 가장 합당한 존재로 인정해주고 높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부모된 이들이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이러한 예수님의 시선으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3)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16절에서 우리가 다시 주목할 말씀은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이들이 제자들에게 쫒겨 나서 예수님과 멀어졌을 때 그 멀어진 아이들을 예수님이 다시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아이들이 줄어가고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갑니다. 마치 오늘 성경에서 아이들이 제자들에게 쫒겨나서 예수님과 멀어진 것처럼 다음 세대들이 주님과 멀어지는 현상 부모님은 예수님과 그렇게 가까운데 자녀는 예수님과 멀어진 가정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저는 바라기는 모든 가정들은 어린 아이들이, 자녀들이 나아가서 가족들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NZ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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