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18) - Disabled Parks 유감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18) - Disabled Parks 유감

일요시사 0 3109

“교회는 건강한 자들이 모여 남의 장애를 비판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자신의 장애를 보는 자들이 모여 서로의 장애를 함께 아파하며, 힘을 모아 장애를 극복해가는 곳이다.”
 
장애인전용 주차장에 일반차량들이 불법으로 주차한 사진들이 페이스북에 오르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장애인전용 주차장이란 앞을 못 보는 사람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사람, 또는 혼자서 걷는 데 심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공간이다.
 
5월 7일자 뉴질랜드 헤럴드에 보도된 사진에 의하면, 택배차량, 람보기니, 벤츠, 심지어 경찰차까지 장애인 전용주차장에 불법으로 주차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중에서 람보기니의 소유자는 일반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혹시 자기 차가 다른 차에 의해 긁힐까 봐, 상대적으로 넓고 안전한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도 얼마 전에 아내의 새로 산 지 얼마 안 되는 차를 일반주차장에 주차했다가 누군가에 의해 살짝 긁힌 경험이 있다. 모두들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도덕적 불감증이 이 사회에도 만연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20여 년 전 이민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한 번은 저녁 퇴근시간에 하버 브릿지에서 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선 적이 있었다. 연료게이지가 바닥을 가리키고 있어서 기름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운전중간에 기름이 떨어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나로 인해 퇴근길의 하버브릿지는 정체가 더 심해졌고, 나는 미안하고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손가락질 하거나 욕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뒤에 서더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키위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무슨 문제냐고 친절하게 물어 보았다. 기름이 떨어졌다고 하자,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비상전화박스까지 걸어가서 직접 경찰에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내 영어가 부족한 것을 알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도와준 것이다. 잠시 후에 경찰차가 왔고, 뒤에서 밀어주어서 하버브릿지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아무런 페널티도 없었고, 경찰도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나를 도와준 키위 친구는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인근 주유소에서 연료를 구해다 넣어주면서, 주유소 위치를 알려주며 계산하고 가면 된다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 때 많은 생각들이 오버랩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적소리에, 욕설은 물론이고, 누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방인에게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더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선진문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이 사회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다.
 
그 후에 이 사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사회도 각박해지고, 규제도 심해졌다. 처음 왔을 때는 운전면허증에 사진도 없었다. 생소한 이민자에게는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법을 잘 지키면, 면허증에 사진도 없단 말인가. 사진 없는 운전면허증은 이 사회의 신용도를 웅변하는 듯 했다.
당시에는 면허증에 있는 이름과 주소만 외우고 있으면, 무면허자도 경찰심문에 걸릴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고, 이제는 사진부착이 필수가 되었다. 그 만큼 이 사회도 신뢰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장애인전용 주차장 불법주차 사건은 특히 더 충격적이다. 이곳에 20여 년을 살면서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아무리 주차공간이 없어도, 장애인전용 주차공간은 언제나 확보되어 있었고, 그곳에 차를 대려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이번 사건을 공개한 페이스 북에는 모두 100개 이상의 장애인전용 주차장 불법주차차량들의 사진이 올라있다고 한다. 다음 글과 함께…… “You’ve got my car park, want my disability too?”
 
이 사회도 병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육신은 멀쩡하지만,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만연되어 있다. 교회에서도 장애인전용 주차장에 일반차량들이 주차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교회는 이 사회의 장애인들을 위한 ‘disabled parks’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마음이 상하고 영혼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장애인전용 주차장’이다. 그런데 이 ‘장애인전용 주차장’에 장애인은 안 보이고 온통 멀쩡한 사람들뿐이다. 오늘날 교회들에는 자신의 장애는 보지 못하고 남의 장애만 들추어내려는 스스로 건강한 사람들의 불법주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교회는 스스로 영적 장애인임을 깨닫고 아는 사람들을 위한 ‘disabled park’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교회는 건강한 자들이 모여 남의 장애를 비판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자신의 장애를 보는 자들이 모여 서로의 장애를 함께 아파하며, 힘을 모아 장애를 극복해가는 곳이다. 교회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갈 수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사회의 장애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disabled park’여야 할 교회가 점점 건강한 자들의 잔칫집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이 마음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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