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사명으로 승화시키라

기독교


 

아픔을 사명으로 승화시키라<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일요시사 0 4864

요 4:3-26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상처는 몸의 상처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있습니다. 

얼마 전 기독교 연예인들이 성가단을 만들어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카메라가 사람들의 얼굴들을 비춰주는데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몇 해 전, 우리나라에 신종 플루가 유행할 때 7살 난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습니다. 그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식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제 마음에 전해졌습니다. 저를 더 울컥하게 만든 것은 그분이 그 아픔을 갖고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게 신앙의 신비요 능력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지방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나 대화를 하시는 가운데 이 여인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얼마나 삶이 기구한지 모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여인은 무려 여섯 번이나 남편을 맞이한 여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수가성 여인은 매우 더럽고 부정한 여인이라 하지만 실상 이 여인은 더럽고 부정한 여인이 아니라 상처가 많고 아픔이 말할 수 없이 큰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자기가 인생을 걸었던 사람에게 뼈아픈 배신을 다섯 번이나 당한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픔과 상처가 많았기에 이 여인은 사람 만나기가 싫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나오는 한 낮에 물 길러 우물가에 나갔습니다. 놀라운 은혜는 그 상처와 아픔으로 신음하던 여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 옛날, 수가성 여인을 찾아오신 것처럼 상처와 아픔이 많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와 가정을 찾아오실 때, 우리에게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상처와 아픔에서 해방을 받고 회복되려면

1. 우리의 당한 아픔과 상처를 주님이 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본문을 보면 수가성 여인이 그 특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1) 아픈 상처에 지배를 받으면 폐쇄적이 됩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뭐라고 말을 거시는가 하면 “물 좀 달라” 그랬더니 여인이 하는 말이 “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여인은 예수님과 선을 그으면서 마음을 걸어 잠급니다. 

2) 과거의 아픔과 과거에 붙잡히면 공격적이 됩니다. 
창세기 24장에 보면 리브가가 아브라함 노종에게 친절을 베푸는 장면입니다. 리브가는 친절하게도 노종만 아니라 종이 타고 온 낙타들에게도 몸을 아끼지 않고 물을 먹입니다. 그런데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께 물을 주기는커녕 더 이상 말도 못하게 쏘아 붙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픔이 많고 상처가 많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사나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3) 과거의 아픔과 과거에 붙잡히면 사람이 회피적이 됩니다. 
16절을 보면 예수님이 생수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리자 17절에서 즉시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합니다. 무엇입니까?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니까 곧바로 회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처에 붙잡힌 사람의 반응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처와 아픔을 안 받고 살아갈 수는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상처와 아픔에 지배는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이미 다 알고 계셨고, 왜 그녀가 남편이 다섯이나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아셨습니다. 주님의 아심의 은혜가 임할 때 여인은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2. 아픔과 상처는 영적인 목마름이 되어야 한다. 
수가성 여인은 아픔과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굉장히 중요한 영적인 보화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영적인 목마름이었습니다. 영적인 목마름이야 말로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예수님과 여인이 만나 장소가 우물가이며 여인이 물을 구하러 우물가에 나온 행위는 바로 여인의 목마름을 상징합니다. 무슨 목마름일까요?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고 영혼의 목마름입니다. 이 여인은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지만 동시에 영혼이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말씀하시니까 여인은 귀가 번쩍 뜨여 간구하기를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인의 목마름이 느껴지십니까? 저와 여러분도 세상에 목마른 사람들이 아니라 영혼이 목마른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온다고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에 속했다고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목마른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이 수가성 여인이 영혼이 목말랐을까요? 바로 아픔 때문이에요. 아프니까 영적으로 목마르고 아프니까 하나님을 더 찾게 된 것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성도는 아픈 만큼 하나님에 대해 목마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아픔과 상처는 사명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승화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승화는 건너뛰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런 승화가 나옵니다. 본문 처음에 소개되는 여인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짓눌리고 붙잡힌 한 기구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면 그리스도를 발견한 감격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담대히 전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짓눌려 살던 여인이 실패한 인생에서 사명자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에게 있어서 아픔과 상처는 사명의 에너지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세요.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노예가 되어서 남의 집 종살이와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가진 아픔과 상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은 내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평생의 아픔과 상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사명의 출발이었습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당한 아픔과 상처, 주님이 다 아십니다. 바라기는 아플수록 하나님을 목말라 합시다. 상처가 깊은 만큼 더 하나님을 목말라 합시다. 또한 그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하기 위한 사명의 출발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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