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20) - 낮과 밤, 밤과 낮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20) - 낮과 밤, 밤과 낮

일요시사 0 1471

“대낮에 사는 것 같아도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사는 사람이 있고, 어둠 속에 갇힌 듯 힘겹게 살아도 밝은 대낮과 같이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 길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세상적 가치관에 젖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 오직 영적으로 눈이 뜨인 사람에게만 보이는 길이다.”:

대학시절에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계룡산 갑사라는 절의 어는 암자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갑사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한 30여분 걸어 올라가노라면 왼쪽에 있는 작은 암자였다.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신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의 산길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하루는 바람도 좀 쐴 겸 동학사로 나들이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입구에 있는 주막에 앉아 곡차를 곁들여 빈대떡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산사에서는 막걸리를 곡차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곡차를 한 잔 하다 보니, 어느새 초저녁이 되었다. 아뿔싸!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진다는데, 서둘러서 일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산길에 접어들자 어둠이 깔려 오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자주 다니던 길인데 숙소야 찾아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막연한 위로를 삼으면서 뛰다시피 걸어갔다. 그러다 이 깊은 산속에서 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점점 컴컴해지는 산길을 걸음아 나 살려라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산속은 완전히 깜깜해졌다.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이 길을 덮치고, 산을 삼켜버렸다. 눈 앞에는 분명이 길이 있을 텐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계룡산에는 사나운 산 짐승도 많다는데, 어디선가 살쾡이나 반달곰이라도 금새 나타날 것 같았다.

이대로 밤을 지새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밤을 보낸다는 게,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심호흡을 하며 두려운 마음을 잠시 진정시켜 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내가 있는 위치를 상상해본다. 암자가 지금 위치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는 확신이 선다.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에 산비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산비탈만 올라가면 암자가 있을 것 같았다. 있는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산비탈을 올라가는데, 내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올라가다 자포자기 상태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한참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바로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누구슈?” 옆방에 묵고 있는 김씨 목소리였다. 이젠 살았구나. 나에요! 나 좀 살려줘요!! 잠시 후 김씨가 손전등을 켜고 내려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후의 나의 삶이 그와 같았다. 고교시절에는 나름대로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었다. 성경도 어느 정도 읽었고, 기도도 나름 열심히 했다. 고 3때 CCC에서 하는 전도훈련도 일주일간 합숙하며 받았고, 집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에 사영리를 들고 나가 전도도 해보았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신앙이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엄격히 말해서 당시 내게는 신앙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막연히 믿었고, 예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교회도 다니고, 성경도 읽었던 것이다. 신앙은 도덕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다. 소위 종교생활을 잠시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른 종교나 철학을 만나면서 종교로서의 기독교와도 결별을 하게 되었다.
 
산 속에서 갑자기 어둠에 갇혀 길을 잃었듯이, 이후의 삶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삶이었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영적으로는 어둠에 갇힌 삶이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무의촌에서 공중보건의로 삼 년을 보내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었다. 주위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고, 개업을 해서는 내로라하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아내는 내과의사로서 이미 개업가에서는 알아주는 상태였으니, 소위 잘 나가는 의사부부였다. 문자 그대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는 출세하고, 돈 잘 벌고, 잘 나가던 그 때가 바로 어둠에 갇혀있던 때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낮이 있고, 밤이 있다. 매일 찾아오는 낮과 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낮에 사는 것 같아도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사는 사람이 있고, 어둠 속에 갇힌 듯 힘겹게 살아도 밝은 대낮과 같이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 길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세상적 가치관에 젖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 오직 영적으로 눈이 뜨인 사람에게만 보이는 길이다.
 
그 길은 신비로운 길이다. 분명 눈 앞에 있는데도, 누구에게는 보이고, 누구에게는 가려져 있는 신비로운 길이다. 낮에도 밤이 있고, 밤에도 낮이 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영생에 이르는 생명의 길은 누구에게나 펼쳐져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산속에서 밤을 만난 사람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지 아는 사람은 소리치게 되어 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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