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23) - 십자가에 달려야 할 교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23) - 십자가에 달려야 할 교회

일요시사 0 1677

“오늘날 교회들은 세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오늘날의 교회들이 달려야 할 자리가 아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마음부터 회복되어야 교회가 산다.”
 
2011년 8월 맥도널드 CCTV에 찍힌 한 경찰관의 '1달러짜리 마지막 선행'이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적이 있다. 샌디에고 경찰관인 36세의 제레미 헨우드는 이 년 전 8월 6일 순찰 업무 도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당시 맥도널드 종업원의 증언 등에 따르면 헨우드는 사건 당일 아이스티와 햄버거를 사기 위해 시내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 들렀다고 한다. 매장 내에는 13세 흑인 소년 다비언이 몇 분째 서성이고 있었다. 다비언은 3개에 1달러 하는 쿠키를 사고 싶었으나 10센트가 부족했다. 다비언은 인상이 좋아 보이는 헨우드가 들어서자 쭈뼛거리며 다가와 "10센트만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헨우드는 이유를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냥 내가 사줄게"라며 지갑을 열었다. 다비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Thank you, thank you officer"를 연발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헨우드는 다비언에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고, 다비언은 "NBA 스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헨우드는 "쉽지 않은 일이니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다비언의 어깨를 두드렸다. 헨우드는 음식이 나오자 다비언과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총을 맞아 사망했다.

이날 감시카메라에 잡힌 영상은 지역방송이 톱 스토리로 다뤘고, CNN 등도 '마지막 선행(final act of kindness)'이라는 제목으로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다비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친절한 분이셨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총을 맞았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다비언의 아버지는 "헨우드는 아들에게 1달러짜리 쿠키를 사줬을 뿐이지만, 아들은 평생 그를 롤모델로 삼겠다고 한다. 아들에게 미친 영향은 수백만 달러짜리"라고 했다. 헨우드의 부모는 그의 장기를 모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미 2명의 환자가 헨우드의 간을 성공적으로 이식 받았다고 당시 미 언론들은 전했다.
 
어찌 보면 큰 기사거리가 될 수도 없는, 그저 1달러짜리 선심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미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경찰관과 어린 소년, 백인과 흑인, 선행과 죽음, 장기이식이라는 극적인 요소들이 절묘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1달러짜리 작은 선행이 아니라, 관심이며, 따뜻한 마음이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평범한 말들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따뜻한 관심이 묻어있었다. 이어진 그의 죽음은 흑인소년과 사회에 일 달러가 아닌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깊은 감동으로 전해진 것이다.
 
지난 3월 13일 교황으로 새로 선출된 베르골리오 대주교가 프란체스코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인 성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기본 사명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으로서의 첫 설교에서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 보통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교에서 목자들이 괴롭고 피 흘리고 눈이 멀고 악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변방으로 갈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그의 평소 삶은 겸손하고 검소한 그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로 있으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였고, 교구 내의 작은 아파트에 거주했으며, 해외여행 시에도 비행기의 일반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 피선 후에도 그는 제공된 승용차를 사양하고 공용버스로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 물건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교황에게 주어지는 사도궁전 밖에 있는 숙소에서 살며,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식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얼마 전 세계최대 교인 수를 자랑하는 한국의 초대형교회의 원로목사가 교회에 150억 원의 피해를 입히고, 약 35억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혐의내용은 모두 원로목사의 아들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비통함이 마음을 짓눌러온다.

초대형교회 목사들의 호화생활이 사회문제가 된 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목사도 호화생활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고, 3억 원짜리 벤틀리 승용차를 몰며 30억 원 정도 하는 아파트에 사는 분도 계시고, 남양주에 땅값만 24억 원에 달하는 전원주택에서 사시는 귀한 목사님도 계시다.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근무할 때 병원이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산부인과 레지던트였었는데 병원건물에서 숙소로 가려면 비탈길을 5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했다. 과의 특성상 밤에도 이 언덕을 자주 오르내렸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밤은 온통 붉은 십자가로 덮여있었다. 당시 교회를 떠나있을 때였는데, 공동묘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지 불신앙 때문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이 아닌 죽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습에서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과 깊은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밤하늘을 덮고 있는 붉은 십자가에서 뜨거운 사랑이나 따뜻한 마음씨 대신 차가운 죽음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날 교회들은 세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오늘날의 교회들이 달려야 할 자리가 아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마음부터 회복되어야 교회가 산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