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너머 주님을 바라보라 (마 14장 22-32절)(광림교회정존수목사)

기독교


 

파도너머 주님을 바라보라 (마 14장 22-32절)(광림교회정존수목사)

일요시사 0 2791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14:26-30)

몇 해 전, 제주도에서 좀 멀리 나가 배낚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에 배를 세워놓고 낚시를 하는데 풍랑으로 멀미를 해서 한 10여분 만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낚시 바늘에 고기가 걸려서 잡아 올렸습니다. 부시리라는 물고기인데 크기를 재보니까 1 미터가 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왜 사람들이 고생을 해서라도 낚시를 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낚시를 통해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 가지는 풍랑이 크고 고생이 크면 잡히는 물고기 사이즈도 틀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풍랑이 크고 심하면 거기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도 큰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 풍랑의 고통스런 기억이 다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에 풍랑이 일고 파도가 쳐서 괴롭습니까? 그 풍랑 끝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세요.

본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노를 저어 앞으로 가려하는데 배가 물결 때문에 나가질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9시간 이상 고생했으니 제자들이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그 때 바다 위로 시커먼 물체가 걸어오는데 제자들은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떱니다. 그런데 귀에 익은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기를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다름 아닌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놀람과 공포와 절망으로 요동치던 제자들이 이 음성을 들을 때 그들에게 평안과 기쁨이 임했을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의 지나온 바다는 어떠했습니까? 풍랑이 심하게 일고 놀람과 두려움이 일고 절망의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였습니까? 주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1. 주님이 명하신 그 길에도 바람과 풍랑은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놀라운 기적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에 태워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주목할 사실은 제자들이 바다를 건넌 것은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게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날따라 갈릴리 바다에 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배가 앞으로 나가질 않는 것입니다. 25절 보니까 ‘밤 사경에’라는 시간이 나오는데, 새벽 3-5시 사이입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에서 무려 9시간을 고생한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을 원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라고 해서 왔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있는가?”

여러분 여기에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일, 주님이 명하신 길에도 바람과 풍랑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이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명하시고 시키신 길이면 아무 어려움이나 난관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들이 은혜 받고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싶은데 생각지도 못한 반대가 들어오고, 갈등과 오해가 생기고, 뒷말이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아니 내가 왜 이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가?”

혹 내가 그런 입장이라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세요. 주님이 명하신 길에도 바람과 풍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인생의 밤 사경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본문에서 은혜가 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바다에서 수 시간 동안 고생할 때 그것을 모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은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 바다에 친히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25절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배는 육지에서 수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육지에서는 이 제자들이 어떤 고난을 겪는지 전혀 알 길 없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기들이 있는 고난의 바다와는 너무 멀리 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밤중이었습니다. 모두 잠든 밤에 그들은 고난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유령이라고 두려워 떨었는데, 저 같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놀라긴 했겠지만 얼마나 기쁘고 좋았을까요?

당신은 혹 고난의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까? 인생의 캄캄한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그 고난의 바다에 와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파도 너머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실 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만일 주님이시라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의 요청은 가만히 보면 요청 이상입니다. 그 안에는 베드로의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라면 주님이 나를 명할 때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라는 믿음입니다. 놀라운 믿음 아닌가요? 다른 제자들은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다가오시는 주님께 탁월한 믿음으로 응답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라” 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 즉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 때 고난의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 온전히 고정될 때 고난의 바다 위를 능히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가 시선을 빼앗겼어요. 어디에 빼앗겼습니까?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던 것입니다.

한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사님의 딸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아빠가 보니까 아이가 놀고 있는 나무 바로 옆에 독사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라거나 하면 물릴 게 틀림없는 상황입니다. 그 때 아빠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조용히 부릅니다.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에게 말하기를 "얘야 이제부터 아빠만 바라보아야 한다. 절대 옆을 보거나 다른 곳을 보지 말고 아빠만 바라보고 천천히 아빠에게 오렴" 놀랍게도 아이가 아빠의 말대로 천천히 그리고 아빠만을 바라보면서 걸음을 떼서 아빠에게 와서 아빠에게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밤에 고난의 바다를 지날 때 풍랑이 일고 바람이 불지라도 파도 너머에 주님이 서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시선을 잃지 말고 계속 그 고난의 바다 위를 걸어 나갈 때 온전히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NZ광림감리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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