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25) -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25) -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

일요시사 0 1489

“어둠이 깊을수록 밤 하늘의 별들은 더욱 밝게 빛을 낸다. 낮에는 하늘에 속한 자나 땅에 속한 자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인생에 밤이 찾아올 때 예수의 사람들은 더욱 빛을 낸다. 하나님의 나라는 낮이나 밤이나 예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 있는 나라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나라다.”
 
요즘 한국은 국가정보원이 지난 24일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회의록에 대한 해석을 놓고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에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3일 평양의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한 발언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보수 측은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측은 NLL 포기 발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똑 같은 내용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선명한 무지개를 수시로 볼 수 있고, 쌍무지개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비가 온 후에 공기 중에 있는 물방울들이 프리즘의 역할을 해서 햇빛이 굴절되는 편광 정도에 따라 일곱 가지 색깔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의 무지개 색깔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무지개에는 빨간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보라색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지개가 빨간색이라거나 보라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을 같이 보게 된다. 일곱 가지 중 어느 한 가지 색이 맞는 것이 아니라, 일곱 가지 색이 모두 들어 있어야 맞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을 평가할 때도 쉽게 극히 비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일곱 가지 색깔 중 한두 가지 색깔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인생은 여러 감정들로 이루어진 한 폭의 수채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살아온 여정과 처해있는 환경과 타고난 성격 등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삶도 있고, 밝은 삶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둡기만 한 삶도 없고, 밝기만 한 삶도 없다. 어둠 속에도 빛이 있고, 빛 가운데도 어둠이 있다. 아무리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도 구름 너머에 있는 해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또 아무리 해가 빛나고 있어도 먹구름이 깔리게 되면 세상은 어두워지는 법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고, 빛 가운데서도 어둠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1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요한이 예수가 정말 메시아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어서 제자들을 보내 물어보자 예수님께서 전하라고 주신 말씀내용이다. 의인인 자신은 옥에 갇혀 있었고, 이스라엘은 로마의 정복 아래 있었다. 게다가 종교지도자들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면 의로운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심판의 때가 아니라, 구원의 때였던 것이다. 옛 시대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 시대가 오고 있었지만,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는 새 나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맹인이나 못 걷는 사람이나, 나병환자나 못 듣는 자는 모두 당시 사회에서는 죄인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고, 사회에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삶의 일상적인 즐거움 조차도 박탈당한 채, 희망도 전혀 없이, 절망이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힌 인생들이었다. 그들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살아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가난한 자들이었다.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가난한 자들이었다. 삶의 의미조차 없는 가난한 자들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사회적으로 죽은 자요, 모든 것을 박탈당한 가난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빛이 그들의 삶을 덮고 있던 두꺼운 어둠을 깨뜨렸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이 그들의 삶을 꼼짝 못하게 옭아매고 있던 죽음의 세력을 삼켜버렸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는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누구에게나 임하는 나라다. 하늘이 땅을 덮고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세상을 덮고 있으며, 당신 앞에도 펼쳐져 있다.
낮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지만, 밤이 오면 별들이 빛을 내며 나타난다. 어둠이 깊을수록 밤 하늘의 별들은 더욱 밝게 빛을 낸다. 낮에는 하늘에 속한 자나 땅에 속한 자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인생에 밤이 찾아올 때 예수의 사람들은 더욱 빛을 낸다. 하나님의 나라는 낮이나 밤이나 예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 있는 나라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나라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목사는 리무에라에 있는 오클랜드정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신앙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09) 410 5353, 021 154 339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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