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식을 딛고 재건의 감격을 누리는 비결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패배의식을 딛고 재건의 감격을 누리는 비결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일요시사 0 2003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6-8)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중단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니다 보면 가끔 건축을 하다가 중단된 건물을 보게 됩니다. 건축이 중단된 건물은 이상하게 흉물스럽고 보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이렇게 어떤 문제에 부딪혀서 중단하게 되면 우리 마음에 아주 나쁘고 치명적인 독소가 생기는데 바로 패배의식입니다.

어느 연구소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어항에 물고기를 넣어두고 물고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줍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쏜살같이 그 먹이를 향해 달려들어 먹습니다. 그런데 어항 한 가운데를 유리로 막고서 먹이를 주었더니 물고기가 또 먹이를 향해 돌진합니다. 하지만 유리에 가로막혀 물고기는 충격을 받고 더 이상 가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몇 번을 시도해 보지만 계속 가로막힙니다. 그런 후에 가로막았던 유리를 제거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유리벽이 없으니 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먹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더 이상 달려들지 않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눈에 보이는 장애물이 사라졌지만 새로운 장애물이 생긴 것입니다. 즉, 내적인 장애물, 의식 속에 장애물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다보면 실패를 겪고 좌절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와 좌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느덧 내 마음 속에 장애물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이 장애물이 무엇인가? 바로 패배의식입니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엄두가 나질 않아서 아무 일도 못하고 마음의 감옥 안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 끝나자마자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포로 생활 하면서 가장 그립고 사무쳤던 게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감격과 의욕 속에 성전을 건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 백성들의 결집을 두려워한 북쪽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을 반대하고 아주 격렬하게 방해공작을 합니다. 결국은 성전의 지대만 놓고 성전 건축이 중단됩니다. 백성들은 좌절한 나머지, 더 이상 성전 건축할 의욕도, 용기도 다 상실합니다. 백성들 가운데 무엇이 생겼습니까? 무서운 패배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이 지대만 놓이고 중단된 채로 14년이 흐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무서운 패배의식을 딛고 성전 건축을 재개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있을 때 패배의식을 딛고 재건의 감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좌절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 성전 건축을 포기한 백성들을 향해서 성전재건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학1:8)

놀랍게도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 1:14)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12절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학개가 하나님의 예언을 백성들 앞에서 선포할 때 백성들은 학개의 말만 들은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학개의 말을 들을 때 사람의 말만 듣지 않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은혜를 받은 것은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학교의 한 부서가 인원이 자꾸 줄어서 존폐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교사들의 패배의식이었습니다. 부흥을 위해서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부서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어와나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어와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그 마음들에 감동을 주셨어요. 그리고 나서 온 교사들이 헌신을 하는데 1년동안 그 부서가 배가로 부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있는 곳에 패배의식이 물러가고 재건과 부흥이 있는 것입니다.

2.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을 때 재건의 감격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학개 2장 4절에서 9절에 보면 계속 반복되는 하나의 어구가 있는데,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반복해서 하실까요? 먼저는 재건과 부흥을 이루려면 먼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말이 난무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성전재건을 나 만군의 여호와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재건과 부흥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이루실 때 어떤 환경과 여건이라도 재건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탁월한 비전을 가질 때 재건과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 삶에 패배의식을 딛고 일어서는 중요한 비결이 또 한 가지 나옵니다.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장래의 비전입니다.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7)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지금 이 말씀은 이미 지어진 성전이 아니라 이제 지어질 미래의 성전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전이 지어지면 그 성전이 온 나라를 진동시키고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열방이 주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 말씀이 선포되는 그 당시에는 성전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지대만 지어지고 중단된 흉물스러운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절망이요 낙심입니다. 소망을 가지기에는 너무 페허 같은 장소입니다.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가슴 벅찬 미래의 놀라운 비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심한 인종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이 얘기 해 주는데 버스를 타면 백인과 유색인이 타는 칸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별이 심하던 때에 우리가 잘 아는 마틴 루터킹 목사님이 “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가 처한 현실은 흑인들에게 너무 절망적이고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미래의 놀라운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꿈이 이루어져서 오늘날 미국은 흑인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여러분 미래의 영광과 재건과 부흥은 누구의 몫이 되는가? 가만히 앉아서 남이 재건과 부흥을 가져다가 주겠지 하는 사람은 재건과 부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소망이 없고 절망이 되는 환경이라도 미래의 놀라운 비전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뉴질랜드 광림감리교회 정존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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