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삶 (창 22:1-4, 11-14 )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삶 (창 22:1-4, 11-14 )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일요시사 0 1652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삶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2-14)

인생을 살아갈 때 무슨 일이든 묘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여배우가 복싱 선수가 되어서 우승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 여배우 이야기가, 드라마를 하다가 우연히 복싱을 하게 되었는데, 복싱에 묘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묘미를 느꼈는가 하면 첫 시합에 실컷 두들겨 맞고 완패를 했는데 막 웃음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묘미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느낄 수 있는 묘미 중 하나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뜻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라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미리 내게 있어야 할 것을 준비해 놓으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가슴 떨리는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칼로 죽이려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맞이한 최대의 신앙의 난관이었는데 아브라함은 이 난관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여호와 이레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경험한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는 삶의 축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신앙의 목적을 바로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신앙의 목적을 바로 안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어떤 이들은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서”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6:23에 보면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신앙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많은 이들은 신앙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목적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지 결혼생활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거의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실은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하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하면 내 배우자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줄 것’이기 때문에 결혼하면 행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왜 내 배우자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 않나?’ 하면서 계속 상대방에게 요구하게 되고, 채워지지 않으니까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의 목적은 절대로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의 목적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까?”가 되면 안 되고, “결혼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내 배우자를 사랑할까?” 가 되어야 결혼의 행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되요. 내 행복을 위해서 배우자를 결혼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내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신앙이라는 관계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컨대 신앙의 목적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행복했지만 그 행복마저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과감히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삭을 요구하실 때 여호와 이레의 믿음으로 응답하라.

당신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를 아는 방법이 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었을 때 준 것이 기쁘면 그건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게 소중한 것을 주는 게 꺼려지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사랑하면 주는 게 기쁨이요 감격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 무엇이라도 아끼지 않고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아브라함이 차마 기쁨으로 드릴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다름 아닌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누군가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지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산 아래서 아브라함은 종들을 머물게 하고 이삭과 단둘이 산에 오릅니다. 도중에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아브라함도 이 대목에서는 흔들렸을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제물로 드려야 할 아들이 어린 양은 어디 있냐고 물을 때 아브라함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게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이레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이레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여호와이레의 은혜와 승리를 경험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삭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버금가도록 애착을 갖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삭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이삭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이삭을 요구하십니까? 한 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이레의 믿음으로 순종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어떤 노인이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이 백자였습니다. 값도 상당하였습니다. 하루는 미국에 살고 있던 손자가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왔습니다. 손자가 얼마나 사랑스런지 모릅니다. 그런데 큰 사건이 났습니다. 이 손자가 백자에 손을 넣었는데 그 손이 빠지질 않는 것입니다. 온 식구가 다 달려와서 어떻게든 그 손을 빼려 하는데 빠지질 않습니다. 아이는 떠나가라 울고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그 때 그 백자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어디선가 망치를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백자를 깨버렸습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할아버지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가보인데 손자를 위해서 과감히 깬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자를 깨고 나서 보니까 이 손자의 주먹이 꼭 쥐어져 있었습니다. 주먹을 그렇게 쥐고 있으니까 손이 안 빠진 겁니다. 그 손에 뭐가 있나 봤더니 세상에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를 보면 우리 손에 나만의 이삭을 고집하고 그것을 놓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이삭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바로 여호와 이레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뉴질랜드 광림 감리교회 정존수 담임목사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