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에서 여리고를 만날 때 (수 6:1-5)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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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여정에서 여리고를 만날 때 (수 6:1-5)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NZ광림교회 0 165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움 중에서 마음이 어렵고 견디기 어려운 어려움이 무엇인가 하면 잘 되는 가 싶었는데 갑자기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당황하게 되고 낙심하게 됩니다. 얼마 전, 교회의 한 남학생이 폐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고 잘 회복이 되던 중에 갑자기 다른 쪽 폐에 같은 문제가 생겨서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려움이라고 다 똑같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문제라고 다 똑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려움 중에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유명하고 드라마틱한 본문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들어가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여리고를 만날 때”라는 제목으로 몇 가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문이 더 굳게 닫힐 때가 있습니다.

본문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아주 흥분된 상태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다 마치고 그토록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 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물이 갈라진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이 이 요단강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아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굉장한 흥분과 감격으로 휩싸였을 것이고 믿음의 사기가 충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절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집니다.“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기에 여리고가 굳게 닫혔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에 여리고 성은 견고하기로 유명해서 함락하기가 불가능한 성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알아보니까 성벽 두께가 보통 2m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이 성이 문을 딱 걸어 잠그면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정말 큰 난관에 부딪힌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계속되는 어려움 중에 만나는 어려움은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한참 막 잘 되는가 싶고, 하나님이 막 내 삶에 역사하시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마음이 어렵고 낙심이 됩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의 여정 가운데 만나는 어려움과 시험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은혜의 여정 가운데서 여리고를 만날 때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어려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가운데 만나는 어려운 난관은 나를 온전케 하고 회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믿음의 여정 가운데 계십니까? 은혜의 여정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리고를 만날 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2. 닫힌 여리고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의 여정 가운데 여리고를 만날 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의 여리고를 만날 때 닫혀있는 여리고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어떠합니까? 여리고를 만나면 닫혀 있는 여리고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너무 꿈쩍도 안한다고, 너무 여리고가 굳게 닫혀 있다고 원망합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닫힌 여리고만 보고 낙심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 여리고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닫힌 여리고를 열고자 하지만 열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불평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들 생각처럼 여는 게 아니었어요. 뭐에요? 그 성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서 여리고를 만날 때 닫힌 여리고만 볼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여리고를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2절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여리고는 내가 여는 게 아닙니다. 여리고는 하나님께서 쥐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닫힌 여리고를 볼 것이 아니라 그 여리고를 주실 하나님을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문제의 결론을 갖고 여리고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 여리고를 이기고 해결받는 놀라운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본문의 이스라엘은 여리고를 차지하기 위해 아직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시도를 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뭔가하면 “이 성과 왕과 그 용사들을 이미 네 손에 넘겨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시제입니다. 손에 넘겨주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이미 모든 싸움이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와의 싸움은 결론이 이미 난 싸움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여정, 은혜의 여정에서 만나는 여리고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게 이미 결론이 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지고 위기에 몰리고 누명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론을 다 압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계속 주인공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위기에 몰리게 하고 누명을 쓰게 해서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습니다. 결론은 주인공이 최후 승리를 하고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만 그런 게 아닙니다.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런 드라마가 삶에 펼쳐집니다. 당장은 문제의 여리고가 너무 커서 안될 것 같고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결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론을 알고 나아가는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4. 일치된 순종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부흥을 가져오라. 

본문의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성령이 역사하실 때 어떻게 일치된 순종이 이루어지며, 일치된 순종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냐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뭐라고 명령하시는가 하면 이스라엘 온 백성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필두로 여리고성을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를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나팔을 불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상상을 해 보기 바랍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2백만 명의 사람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여리고성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돌았다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서너 명만 모여도 마음이 갈리고 불평이 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무리가 불평하나 없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은 여리고가 무너진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일치된 순종의 모습입니다. 일치된 순종은 인간의 노력 갖고 되지 않습니다. 일치된 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의 감동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된 순종은 그 견고한 여리고가 무너지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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