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38) - 아버지 추억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38) - 아버지 추억

정원교회 0 2302
9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말년에 위암과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한국에 홀로 남아 계시다가 이곳으로 오셔서 마지막 3 개월 정도를 가족과 가까이서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말기 위암과 치매를 앓으셨지만, 크게 고통에 시달리거나 주위에 민폐를 많이 끼치지 않고 평온하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마지막 삼 개월 동안 보여주신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평안한 모습이셨다.

임종하시기 직전에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주셨지만, 생전에 아버지는 교회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온유하셨지만, 다혈질이라서 때로는 흥분도 잘 하는 불 같은 성격도 가지고 계셨었다. 불 같은 성격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고, 근심걱정도 없이 언제나 잔잔한 호수 같이 평온한 모습이셨다. 
 
하루는 병상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원병아, 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라. 오늘밤은 너와 같이 있고 싶구나”
그런데 그날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다시 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병원에서 나왔다. 친구들과 헤어져 늦게 집에 들어가 자고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아버지를 찾았다.
“왜 이제서야 오냐? 나는 밤새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가 올 것이라고 믿고 뜬 눈으로 밤새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기억상실증이 심하셨기 때문에 곧 잊으시고 그냥 주무실 줄 알았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침대 밑으로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암세포는 위를 파괴하고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치매로 정신세계 또한 적지 않은 기억들을 상실하고 있었지만, 암세포도 치매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까지 앗아갈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한 아들을 탓하지 않으셨다. 단지 밤새 기다리셨다는 말씀만 하시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옆에 와 있는 아들을 기쁘게 맞아주셨다. 외롭게 혼자 있다 친구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며 아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건너 마을 종분이 할머니는 잘 계시냐?”
“예 잘 계십니다”
“그런데 네가 올해 몇이냐?”
“쉰입니다”
“네가 쉰이라고?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나도 쉰인데…”

아버지의 몸은 오클랜드에 계셨지만, 마음은 이십오 년 전 고향 땅에 가 계셨다. 치매에서 오는 기억상실의 특징은 최근의 일부터 점차 기억에서 지워져 나가는 것이다. 마치 쌓인 먼지가 위에서부터 날라가듯이 말이다. 그래서 때때로 치매환자의 정신세계는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아버지는 헨더슨의 양로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다. 아버지를 뵈러 가노라면 몇몇 노인들이 문 입구 휴게실에 멍하니 넋을 잃고 늘어앉아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노인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창 너머 병원 정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오늘은 혹시 찾아오는 가족이 있을까 기다리는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어느 봄날이었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봄나들이를 나갔다. 병원 안의 정원을 돌다 바깥구경 시켜드리려고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가 대뜸 말씀하셨다.

“여기서 집까지 몇 리나 되냐?”
“예? 한 오십 리는 될걸요?”
“그래? 그럼 집으로 가자”
“아버지, 집까지는 너무 멀어서 못 가셔요”
“부지런히 가면 저녁에는 들어갈 수 있을 꺼다”

집에 가자고 때를 쓰시는 통에 달래느라 꽤 애를 먹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 틈에서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 드시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외롭게 보내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아버지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왔지만, 병원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더 아려왔다.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을 다시 찾아, 자퇴서를 쓰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집에 오시는 내내 아버지는 봄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셨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보시며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아버지의 마음은 고향에 가 계셨다. 아버지는 고향 길을 달리고 계셨다.
 
집에 오시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며 담배를 찾으셨다.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 드시고는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으셨다. 나도 덩달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서 나와 타카푸나에서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좋아하던 레드와인도 한 병 곁들여서…
 
식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 경찰이 오고 음주운전으로 나중에 코트에 서게 되었다.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토요일엔 밀알선교단에서 정신지체아 아이들을 돌보고, 일요일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선교단이나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지금 목사가 되었다. 첫 예배에서 모태에 다시 들어간 듯한 평안함이 찾아왔다. 아버지를 떠나 있던 28년의 방황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못난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시고 몇 일 후 목이 마르다 하시며 물 한 모금 입에 적시시고 평안하게 영원한 잠에 들어가셨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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