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의 길에서 (눅 24:13-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엠마오의 길에서 (눅 24:13-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NZ광림교회 0 2312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인생을 비유할 때 길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다양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맞이해서 집으로 가는 길은 가볍고 신나는 길이지만,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가는 길은 무겁고 부담스러운 길입니다. 

본문에도 한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슬픔과 절망의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걷는 두 제자의 마음이 슬프고 절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던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크고 충격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갑자기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 충격과 슬픔, 그리고 절망 속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무리 큰 슬픔과 절망을 가진 심령이라도 소망을 발견하고 일어서는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이 계실 때 슬픔과 절망의 엠마오의 길이 소망과 기쁨의 길로 바뀌는 것입니다. 
1. 엠마오의 길에서 내 곁에 와 계시는 예수님을 영적인 눈을 떠서 바라보라.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사실이 뭘까요? 그건 바로 “이젠 더 이상 그들에게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 첫째 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 한번은 아이가 잠든 사이에 아내가 외출을 했습니다. 그 사이, 아이가 깨서, 이불을 계속 들추면서 엄마를 부르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함께 있어야 할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하늘이 무너지는 두려움과 절망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크고 두려운 게 뭘까요? 실패도 두렵고, 질병도 두렵고, 상실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반대로 신앙의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은 무엇입니까? 시험이 없고 고난이 없고 역경이 없는 게 은혜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바로 임마누엘의 축복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오셨지만 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바로 그들이 영적으로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였다(16절)”고 말씀합니다.  

신앙이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가까이 가신 것처럼 우리 인생길에서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있을 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헤매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엠마오의 길에 있습니까? 내 옆에 오셔서 나를 일으켜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눈을 떠서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슬픔과 절망 속에 길 가던 두 제자에게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것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말씀에서 떠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 이 말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이미 예언의 말씀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말씀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말씀에서 벗어나면 그 때부터 엉뚱한 게 마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무얼 하셨습니까? 27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에 관해 쓰여진 성경을 풀어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말씀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설명할 수 없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2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에서 슬픔과 절망이 떠나가고 새로운 소망과 열정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이요 역사입니다.

3. 엠마오의 길에서 주님과의 교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주신 것이 말씀 외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30절)” 저녁때가 되어서 두 제자는 예수님께 함께 유하기를 청했고 예수님과 떡을 떼며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이 영적 교제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31절)” 예수님과 떡을 떼며 교제했을 때 그들의 닫혀졌던 영적인 눈이 뜨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이심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교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는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예수님을 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인생의 엠마오로 내려갈 때 무엇보다 예수님과의 교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의 마음은 편치 않고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형에서의 복수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야곱은 얍복강으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하나님과 대면합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하면서 축복하기를 간청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씨름을 하고 천사를 놓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축복하셨습니다. 얍복강으로 내려갈 때 야곱의 마음은 심히 무겁고 어두웠지만, 얍복강을 나올 때는 그에게 소망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이름하였는데, 즉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얍복강을 만날 때, 엠마오로 내려갈 때 하나님과 대면하여야 합니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 소망과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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