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요 2장 1-11절) -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가나의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요 2장 1-11절) -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NZ광림교회 0 2259
흑백 차별이 있던 시절, 한 흑인이 먼 곳에 출장을 갔다가 주일이 되어 근처 교회로 예배하려고 갔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문 앞에서 안내를 맡은 교인이 문을 가로막으며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흑인이 상심을 해서 계단에 앉아 기도하는데 눈물이 쭉 흐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왜 여기에 혼자 앉아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흑인은 "교회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흑인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못 들어갔느냐? 나도 이 교회에 들어가지 못했단다.” 사랑이 식은 교회에는 예수님도 계시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거절되지 않고 초대되신 혼인예식이 나옵니다.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변화’, ‘가능하지 않은 변화’입니다. 가나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임하시면, 예수님이 진정으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구주가 되시면, 물이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833년 찰스 다윈이 자신의 진화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식인종이 사는 섬을 찾아가서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관찰 결과 ‘이들보다 더 원시적이고 퇴화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방법이나 노력으로도 이들을 야만성과 저급한 인격과 혐오스런 풍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34년이 지난 후 그가 그 섬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는 충격적인 광경들을 목격했습니다. 다윈은 기대하기를 식인종들이 34년 전보다 분명히 악화되었거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교회와 학교를 다니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변화가 섬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아보니까, 존 페이튼이란 선교사가 섬에 들어와 이 야만스런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 인생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니까 식인종들도 변화가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자는 변화된 자여야 합니다. 교회는 변화의 장소여야 합니다. 세상이 다 내놓고 다 포기한 물 같은 인생이 이 교회에 들어와서 맛있는 포도주로 거듭나는 장소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가운데 가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1. 불퇴의 믿음을 가져야 변화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퇴의 믿음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믿음인데 본문에서 그 주인공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일주일 이상을 하는 유대의 혼인 잔치의 흥을 이어가는 중요한 수단이 포도주인데, 그게 떨어졌으니 큰 일 났습니다. 그 때 믿음의 여인 마리아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반응이 너무 예상 밖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느니라.(4절)” 예수님의 싸늘한 반응은 마리아를 상심케 하고 실족케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상처받고 물러서지 않고 믿음을 가집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예수는 반드시 이 문제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불퇴의 믿음을 가지고 하인들에게 당부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이릅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다 보면 뒤로 물러설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일하다가 서운케 하는 말을 듣고 엉뚱한 오해도 받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칭찬은커녕 비난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러설 일들이 생길 때마다 뒤로 물러서고 주저앉고 낙심하는 믿음들만 있다면 교회는 절대로 가나의 기적도,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합니까? 물러서지 않는 믿음, 불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2. 아귀까지 물을 채우는 순종이 있을 때 
7절에 보면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명하시기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이 항아리는 식수용이 아니라 정결예식용, 즉 더러워진 발을 씻는 물을 담는 항아리였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예수님이 명하신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하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항아리에 물을 채웠는데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면,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주일에 예배하고, 새벽으로 기도하고,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를 하는데 어떤 때는 이런 것들이 쓸데없어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하나님은 무슨? 예배는 무슨?” 그러나 본문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실 때 순종으로 물을 채우면 그 물은 물로 남지 않고 포도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이전에 한 번도 맛볼 수 없었던 기가 막힌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무엇일까요?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만족을 말합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세상의 포도주가 떨어질 때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포도주를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3.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라.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을 때 주님이 하인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8절)”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입니다. 아주 짧은 말씀이지만 하인들의 놀라운 믿음이 녹아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라면 그 물을 어떻게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줄 수 있습니까? 그들이 떠온 것은 분명히 물입니다. “이 물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아무 말하지 않고 그냥 갖다 주었습니다. 맛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 물을 갖다 주었을 때 연회장에게 비난과 책망을 받을 수도 있지만 갖다 주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 물은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기가 막힌 포도주로 변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소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목사님이 기차에서 무신론자를 전도했습니다. 성경까지 펴서 읽어 주었지만 무신론자는 성경을 빼앗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수년 후, 목사님에게 한 농부가 와서 세례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목사님은 허락을 하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농부는 말하기를 "저희 동네에는 예수를 믿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기차가 지나가면서 웬 물건이 날아와 가슴에 부딪히고는 떨어졌지요" 그것은 성경이었고 농부는 그날부터 성경을 읽고 예수를 영접했으나 세례 줄 사람이 없어 수소문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성경은 바로 그 목사님이 무신론자에게 빼앗긴 성경이었고 그 무신론자가 내던진 성경이 바로 이 농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요? 바로 복음의 은혜, 구원의 은혜입니다.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은혜와 감격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경험한 이 구원의 은혜와 복음의 감격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