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이 아침 묵상(43) - 무너져 내리는 예루살렘

기독교


 

채원병이 아침 묵상(43) - 무너져 내리는 예루살렘

정원교회 0 1564
얼마 전에 아는 목사님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돌아와,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은혜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몇 년 전부터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이번에 무리해서 다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에 새벽 네 시만 되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마침 시리아 사태로 나라가 어려울 때였는데, 온 유대인들이 새벽에 깨어 부르짖는 기도소리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니, 그것도 새벽 네 시에 전 국민이 일어나... 정말 충격이다. 저들은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온 국민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교회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서구 유럽에서 교회는 이미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예배를 드리던 교회건물들이 교인이 없어서 팔려나가고, 예배당이 선술집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왕성하게 부흥이 일어났던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교회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교회는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국민이 새벽 네 시에 깨어 기도하고 있는데, 오늘날 무너져 내리는 교회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인들의 열심은 분명 충격적이며, 오늘날 교회에게 매우 큰 도전을 주고 있다. 교회는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그들의 열심은 오늘날 교회가 본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의 열심에는 문제가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고 말한다(롬 10:2).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도, 올바른 지식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그릇된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예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온 국민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지만, 그 안에 예수는 없다.

그들이 왜 예수를 못박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오늘날 교회의 위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를 왜 못박았으며,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왜 믿지 못했던 것일까? 예수는 자신들이 원하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언약백성으로서, 자신들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해줄 메시아는 필요가 없었다.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현실적인 메시아, 정치적인 메시아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을 주변의 아랍국가들로부터 지켜주고, 모든 나라들 위에 자신들을 높게 세워줄 현실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처럼 구원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현실적인 메시아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현실의 문제들만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으며, 부활승천 하신 예수가 우리의 메시아이며, 우리 신앙의 중심이다. 예수가 없는 예루살렘은 죽은 도시다. 설사 온 국민이 새벽 네 시에 깨어 부르짖으며 기도하더라도, 예수가 없는 예루살렘은 죽은 도시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아무리 많은 무리가 모이고, 아무리 열심히 새벽에 부르짖어도, 예수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예수가 있는 교회란, 주님께서 달리시고 부활하신 십자가의 의미가 살아있는 교회다. 십자가를 놓치고, 현실의 문제만 붙들고 있는 한, 예수도, 십자가도 우상에 불과하다. 예수는 우리의 문제나 해결해주시는 해결사가 아니다. 예수의 이름이 십자가의 깊은 의미로 우리 안에 살아있을 때만, 예수는 진정 우리의 메시아일 수 있다.

십자가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말할 수 없는 고뇌와 아픔과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자리다. 오늘날 십자가에 베어있는 그 깊고 깊은 고뇌와 아픔과 눈물과 피가 잊혀져 가고 있다. 십자가는 점점 가벼워지고, 십자가를 통해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함께 가벼워지고 있다. 싸구려 은혜, 싸구려 사랑 속에서 예수가 달린 십자가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십자가와 함께 교회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십자가에는 아들을 내어주시며, 죄인들을 대신해서 아들에게 우주적 심판을 내리신 아버지의 고통스럽고, 깊은 눈물이 베어있다. 십자가에는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으시면서 절규하신 주님의 처절한 영적 고통의 피가 베어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십자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적 예루살렘인 교회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