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교회관이 가져오는 복된 성도의 삶 (고전 12:11-13, 27-31)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올바른 교회관이 가져오는 복된 성도의 삶 (고전 12:11-13, 27-31)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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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

장난감 벽돌을 갖고 노는 꼬마에게 아빠가 묻습니다. “뭘 만들고 있니?" 이 말에 아이 하는 말이 "쉿, 아빠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는 중이에요." 아빠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교회에 갈 때마다 떠들고 장난만 치는 줄 알았는데, 교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견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니?"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도 참! 교회에서는 조용히 해야죠.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는데 떠들면 깨잖아요." 이 말에 아빠가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교회에 갈 때마다 예배 시간에 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교회는 자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예화가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건강한 신앙을 위해서는 교회에 대한 바른 생각, 즉 바른 교회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희 가정이 미국에서 4년 있을 동안 한 작은 미국 교회를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그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되어 미국을 떠날 때까지 그 교회를 나갔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교회들을 다녀볼까도 생각했습니다. 미국까지 와서 유명한 교회들도 많은데, 그 교회들도 가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은 아이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것은 아이들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절대 경험을 쌓거나 한번 다녀보는 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만나게 하시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속한 교회는 한번 다녀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신 교회라는 것입니다. 

1. 교회는 은혜를 입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그냥 공동체가 아니라 은혜 공동체입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시고 구원하신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셨냐?’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이 사실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하실만한 그 무엇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Grace입니다.  

본문 13절에서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는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신분이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주인이든 그거 내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떤 신분이었는가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는 절대 부흥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내가 누구이든, 누구였든, 내가 어떤 신분이든, “내가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 밖에 없고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자랑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부흥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 교회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공동체입니다. 
사도바울이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기가 막힌 메타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27절을 보세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교회의 머리가 누구라고 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다른 성경에서 수차례 언급했습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 1:22),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골1:18) 교회의 머리는 어떤 사람이 아닙니다. 목사도, 장로도, 그 어떤 누구도 이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셔야 합니다.

제가 사회복지시설에서 목회할 때 한 자폐아동이 거의 매일 교회 와서 저에게 하는 질문이 “ 전도사님, 이 교회 누구 꺼에요?” 그러면 저는 항상 되 질문합니다. “누구 꺼 같으니?” 그러면 아이는 “하나님 꺼”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매일 그 대화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매일 교회 와서 보니까 저희 부부가 항상 교회 있거든요. 아마 아이가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루는 와서 또 질문을 합니다. “전도사님, 이 교회 누구 꺼에요?” 늘 언제나 그렇듯이 저는 되 질문하기를 “누구 꺼 같으니?” 그런데 그 날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니네들 꺼”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황당해서 한참을 웃다가 그 말에 깊은 교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요, 분명히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신데, 교회가 언제 변질되는가 하면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다른 무엇인가가 교회의 머리가 될 때 교회가 변질되고 교회에 큰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 즐겨 연주하는 성가가 헨델의 메시아, 그 중에서 가장 백미는 “할렐루야” 합창입니다. 저는 이 “할렐루야”를 들을 때 마다 가장 참 은혜가 되는 부분은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을 이기시고 마귀를 정복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의 지체이다. 
바울은 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누굽니까? 성도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그 몸의 각 지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손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지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1) 지체는 붙어 있어야 합니다. 몸의 지체는 몸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지체가 유능하고 아름다워도 몸에 붙어 있을 때에 유능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령, 손 모델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손이라도 몸에서 떨어져 있다면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몸의 지체는 몸에 붙어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잘 붙어 있을 때입니다 

2) 지체는 다른 지체를 돌보아야 합니다. 몸에 한 곳이 아프면 그것만 아프지 않고 온 몸이 다 아프고, 온 몸이 다 고생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26절) 교회의 성도는 다른 성도가 아프면 같이 아파야 합니다. 다른 성도가 괴로우면 같이 괴로워야 합니다. 

3) 지체에는 z중요하지 않은 지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28절 보면 교회의 지체에는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몸이 다 손이고 다 발이면 괴물이 되는 것처럼, 교회는 다 사도가 되고, 다 선지가가 되고, 다 교사가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교회 안의 모든 지체와 모든 직분이 다 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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