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52)- 인생광야를 달려라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52)- 인생광야를 달려라

정원교회 0 2290
2014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는 갑오년 말의 해다. 나는 말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왠지 말이 좋았다. 왜 말을 좋아했을까? 우선은 내가 말띠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말띠라는 사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말갈기 휘날리며 초원을 질주하는 말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젊어서부터 말처럼 달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인생이라는 초원을 마음껏 누비며 거침없이 달리는 말처럼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 같은 말띠 남학생이 여덟 명이 있었다. 대부분 그렇듯이 고등학교 때 여덟 명은 정말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친해졌다.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지만, 가정형편이나 개인사정상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끼리 우정을 다짐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자는 뜻으로 모임을 결성했다. 내가 주동이 돼서 ‘야생마’로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기독청년들의 모임치고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만장일치로 정했다. 모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앞에 무릎 꿇지 말고, 야생마처럼 힘차게 달리며 살자는 뜻으로 정한 이름이었다.

모임을 결성한지 올해로 서른 한 해가 지났다. 그 중 두 명은 목사가 되었고, 세 명은 교회를 떠났다. 현재 모임은 이름만 유지가 될 뿐 흐지부지하다. 

한국에 신학수업을 위해 가 있는 동안 몇 번 만난 친구들에게서 나는 야생마처럼 평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신앙 안에서건, 신앙을 떠나서건, 친구들에게서 야생마의 기상은 사라졌다.

사회에 나와서 각자 다른 길을 달렸다. 목사, 의사, 군인, 교사, 사업가, 장사치…. 각자 달려야 할 초원은 달랐지만, 모두 한 마리 야생마가 되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지금 초원을 달리지 않는다. 

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았지만, 현실은 배고픔과 굴종이었다. 헌신적으로 섬긴다고 해서 빵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목회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드라이빙스쿨을 하며 빵을 얻고, 틈틈이 선교를 하고 있다.

다른 친구는 육사를 졸업하고 장군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옆에서 봐도 험난한 길을 자원해가며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별은 너무 멀리 있었다.그 밖의 친구들도 길은 다르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과 타협하며 살거나, 신앙으로 위로를 얻으며 살고 있다.

현실은 이상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그들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무엇이 나의 친구들을 달리지 못하게 했을까? 좌절이다. 달리고 달려도 끊임없이 닥쳐오는 삶의 어려움이 그들을 지치게 한 것이다. 젊은 시절 가장 혐오했던 무기력감이 지금은 여러 친구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때로는 현실을 초연한 듯 말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 진정한 꿈이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실은 초원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은 초원을 꿈꾸며 달렸지만, 현실은 초원이 아니었다. 삶은 광야처럼 삭막했디. 아무리 달려도 초원은 보이지 않았다. 초원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지치지 않고 질주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러나 야생마는 달려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황량한 광야다. 눈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황량한 광야에서 푸른 들판을 볼 수 있어야 달릴 수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달릴 수 있다. 꿈이 죽은 곳에 푸른 들판은 없다.

나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한 마리 야생마가 되어 달리고 있다. 삶이라는 광야를 달리고 있다. 전에도 달렸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전에는 세상광야를 달렸고,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를 달리고 있다.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달렸고, 지금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달리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푸른 들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푸른 들판이다. 황량한 광야 가운데 펼쳐져 있는 푸른 들판이다. 그 나라는 꿈이 있는 자에게 열려있는 드넓은 초원이다. 

세상나라는 황량한 광야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황량한 광야다. 아무리 화려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도 그곳은 삭막한 광야다. 잘 먹고 마음껏 마시면서 궁전 같은 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도, 그곳은 황량한 들판이다.

하나님 나라의 초원은 황량한 광야 가운데 감추어진 나라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황량한 광야를 달린다. 푸른 들판을 꿈꾸며 광야를 달린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나라를 달린다. 그 나라는 꿈 속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우리의 현실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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