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56) - 설날과 가룟 유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56) - 설날과 가룟 유다

정원교회 0 2145
1월 30일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었다. 어려서는 설날이면 떡만두국에 맛난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세배 돈을 두둑이 받는 즐거움이 있었다. 음식과 돈이 오고 가는 가운데 훈훈한 정도 함께 오고 갔었다. 

그런데 객지에 나와 산지 20년이 되다 보니 설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명절이란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설날을 한국에서처럼 명절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뉴질랜드식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식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한 상태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을 사는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천국백성인지, 세상백성인지, 하늘에 속한 사람인지, 땅에 속한 사람인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게 살아갈 때가 많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만 19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4일 발표한 '201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4%에 그친 반면에 가톨릭은 29.2%, 불교는 28.0%였다고 한다. 

개신교가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며,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이다(히 11:13).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서 힘들어 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마음 속으로는 이 세상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면서 살고 싶은데, 성경은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는 타향사람이고 나그네라고 말한다. 

나그네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세상가치에 물들지 않고,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 열두 명 중 한 사람으로 주님을 삼 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을 배반하고 원수들에게 넘겨주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길 때 받은 돈이 은 삼십이었다(마 26:15). 은 삼십은 소가 이웃집 노예를 받아 죽게 했을 때, 소 주인이 노예 값으로 물어주어야 할 금액이다(출 21:32). 가룟 유다는 자기 주인을 노예 값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주님을 넘겨준 것은 매우 의아하다. 은 삼십은 노동자 한 달 급료에 해당하는 정말 볼품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돈 욕심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룟 유다가 주님을 헐값에 팔아 넘긴 것은 주님에 대한 실망이 더 큰 이유였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는 주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기적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천국복음의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주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는 없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부유하게 해주지도 않으셨고, 그들의 조국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주지도 않으셨다. 현실의 삶에 실제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의 주님과 메시아가 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주님이라면 돈 몇 푼 받고 팔아 넘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의 마음이었다. 돈에 대한 욕심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데 대한 실망,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주님을 팔게 된 것이다. 

흔히 가룟 유다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 우리 안에도 가룟 유댜의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속으로는 가룟 유다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몸은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 드리지만, 실제로는 주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산다. 작은 욕심 앞에 주님을 헌신짝처럼 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 나의 행복이 주님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복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현실적인 것에만 매달린다. 현실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힘든 삶이 계속될 때, 마음 속으로는 주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행복지상주의, 지나친 현실주의가 가룟 유다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이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히 살 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가룟 유다는 이 세상의 것을 붙잡다가 주님을 배반했다. 

하나님이 Lord가 아니라, 내가 lord가 되려는 데서 자꾸 혼동이 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assistant가 되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내가 lord가 되고,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능력 있는 종이 되는 현실이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헐값에 팔았다. 욕심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을 살 때, 우리도 가룟 유다가 될 수 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면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영적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