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알람 (눅 8:26-39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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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알람 (눅 8:26-39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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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 조류 인플루엔자(AI)의 확산 때문에 많은 축산 농가들이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AI의 징후만 보여도 정성껏 키워온 오리와 닭 수만 마리를 눈물을 머금고 매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이와 같은 비극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의 탐욕과 욕심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이요 알람입니다. 

본문에도 돼지 떼가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을 내어 쫓은 기사입니다. 갈릴리 호수 동편 마을인 거라사에 아주 심각하게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집이 아닌 무덤들 사이에서 거하였고, 쇠사슬로 묶어 고랑을 채워 놓아도 그것을 끊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바로 이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만나자 격렬히 반응하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 귀신을 향하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까 대답하기를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왜 이름이 군대인가 하면 수없이 많은 귀신이 이 사람에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군대 귀신이 간청을 하기를 “나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고, 저 산 비탈에서 먹고 있는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그걸 허락하시자 귀신이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돼지들이 비탈로 내리 달아 호수에 빠져 몰살을 당했습니다. 귀신이 나간 사람은 온전케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청했습니다.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알람이라는 제목으로 몇 가지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알람이란 어떤 중요한 일이나 위험이 있을 때 그것을 기억나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알람이 되는가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1.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 주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알람입니다.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은 매우 상태가 심각해서 보통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상 행동과 초인적인 힘을 가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이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바로 정신 질환입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뉴스가 무엇입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도시 주택가에서, 그것도 대낮에, 아동 성폭행과 강간, 끔찍한 살인이 벌어집니다. 그 범인들을 조사해 보면 거의 다 정신질환자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버젓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내 이웃에 살았을까?”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만 정신 질환을 겪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단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의해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악령에 붙잡힌 것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현대인들은 본문에서 무덤 사이를 오가며, 옷도 입지 않고, 소리를 지르던 사람과 같습니다. 무덤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정신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감사한 것이 귀신들린 자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귀신 들린 자가 한 말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보세요. 예수님이 오셨는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억해야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은 마음에 평화와 위로를 주시기 위함이지만, 때로는 예수님의 찾아오심이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괴로움을 주시는가? 그 괴로움을 통해서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괴로움입니다. 이 괴로움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알람입니다.


2. 우리의 이름을 물으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알람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물으시는 질문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입니다. 이게 무슨 질문입니까? 이름을 묻는 질문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정체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마귀가 가장 잘하는 특기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이 하는 행동을 보면 마귀의 행동과 매우 흡사합니다. 최근 들어 북한이 자꾸 평화를 운운하고 화해 무드를 만듭니다. 자신들이 가장 평화를 사랑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되자고 자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북한이 저렇게 평화, 화해를 말한 후에는 항상 공격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감추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교회를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거기에 스게와라는 제사장의 아들들이 악귀 들린 자에게 바울이 말하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하면서 흉내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악귀가 대답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오늘 우리가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마귀가 벌써 알고 비웃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붙들고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로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않겠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손을 놓지 않고 씨름을 하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묻는 질문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것은 바로 “야곱아 도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 바로 정체성을 묻는 하나님의 알람소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알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면서 그에게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환도뼈를 치시면서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이십니까?


3.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알람입니다.

본문에서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갔을 때 그 돼지 떼가 다 바다에 다 몰살당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무시무시한 광경입니까? 마치 조류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천, 수만 마리의 오리와 닭들을 한꺼번에 매몰시키는 것과 비슷한 장면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감사하고 감격할 수밖에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 가 죽어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돼지 떼 2천 마리면 돈으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한 가치입니다. 바로 한 사람, 한 생명이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그것도 악한 귀신에 잡혀서 무덤가에서 해매며 고통당하는 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돼지 떼 2천 마리가 희생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영혼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돼지 2천 마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보다 더 값진 희생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희생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희생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알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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