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57) - 봉천동 사람들과 욥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57) - 봉천동 사람들과 욥

정원교회 0 2210
늦은 나이에 부름을 받아 한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가 있는 동안 서울의 신림역과 봉천역 중간지점에 있는 원룸에서 지냈다. 

원룸 일층에는 24시간 마트가 있었다. 저녁 6시경이면 일흔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혼자 저녁식사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길에서 종이를 주어다 파는 분이었다.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할아버지는 컵라면 한 개에 막걸리 한 통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셨다. 혼자 하는 외롭고, 보잘것없는 저녁식사였지만, 할아버지는 만찬을 즐기듯 하셨다. 할아버지에게는 고독도 사치인 듯했다. 단지 살아야 할 삶이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컵라면 한 개와 막걸리 한 통에 행복해하며,,,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길을 걷다 봉천역 앞에 이르면,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7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할머니가 계셨다. 젊었을 땐 고왔을 것 같은 얼굴에는 잔 주름이 가득한 체, 뭔가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조그마한 바구니에 나물을 담아 팔고 계셨는데, 다 팔아야 만 원이 안 될 듯 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운명에 맡기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돈 만원만 손에 쥐고 돌아가면 좋겠단 마음으로,,,

할머니를 지나 시장골목으로 들어가, 국밥집에 들어간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고, 맛도 있었다. 국밥집에서 이런저런 시장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나처럼 혼자 식사하는 사람도 있고, 몇몇 친구들끼리 막걸리 한 잔 곁들여 신나게 떠들면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밥집에는 훈훈한 인간냄새가 난다. 한 그릇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에 하루의 고달픔을 담아내며,,, 

종이 주어 팔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할아버지, 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 국밥집의 시장사람들,,, 나는 그들의 삶을 모른다. 그들이 기독교인지 아닌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선이나 악을 볼 수 없었다. 단지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인생들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봉천동에서 내가 만난 종이 줍는 할아버지나, 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나, 국밥집의 시장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가면무도회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상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할 훈훈한 정이,,, 교회보다 오히려 시장이나 국밥집에서 더 느낄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욥은 아들 일곱에 딸 셋과, 무수히 많은 가축과 종들을 거느리며 부유하게 잘 살고 있었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불행이 덥쳐왔다. 맑은 하늘에서 날벼락 떨어지듯이, 평온한 평야에 폭풍이 몰아치듯이 닥쳐왔다. 자식들은 모두 죽고, 재산도 삽시간에 모두 날아갔다. 

욥은 계속되는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켰지만, 하나님은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가 없구나.”(욥 23:8-9)  

욥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면팔방을 둘러보아도 하나님은 계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고난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욥 23:10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마침내 욥은 고난과 ‘하나님의 부재’라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나게 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이 땅에서 하나님을 가장 경외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해주셨던 욥도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이 밝히 믿게 된 것이다. 

흔히들 욥기의 핵심주제를 고난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욥기에서의 주제는 단순히 고난이 아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고난은 물론이고, 악한 자가 더 잘 살고, 의인이 어렵게 사는 문제, 전쟁의 문제 등 인생의 모순되어 보이는 문제들을 인간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닥치는 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역경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욥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내게서 완전히 떠나간 것 같은 잔인한 시간조차도,,, 

욥과 같은 의인도 가장 잔혹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떠나가신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역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자녀들을 떠나지 않으신다. 설사 우리가 지옥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끝까지 찾아오셔서 구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을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으시는 법이 없다. 욥이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못 보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욥을 지켜보고 계셨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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