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58) - 종교배우와 못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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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58) - 종교배우와 못난이

정원교회 0 2788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맡은 연기를 하며 살다가, 인생의 막이 내리는 순간, 자신의 연극도 끝이 난다. 이처럼 인간이란 연극무대에 올려진 배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담당하며 살다가 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배우란 무엇인가? 배우는 관객 앞에 서서 자신이 맡은 역을 연기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라는 말은 삶의 의미와 진실성을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고, 풍자다. 문득 나는 얼마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진실하게 살고 있나 자문해본다. 혹시 나야말로 연극배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목사님 같으십니다” 전에는 목사같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 목사같이 보인다니 내가 목사가 되어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괜찮았다. 헌데 잠시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순수해 보였는데, 지금은 별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단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느 분이 “목사님은 목사님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습니다”라고 한 말이 기억이 났다. 목사 냄새가 나는 순간부터 이미 목사가 아니란 뜻으로 이해된다. 목사님 냄새란 어떤 것일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외식하는 자’라고 자주 비판 받았다. ‘외식하는 자’라는 말은 원래 ‘무대에 서는 배우’라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리고나 사마리아,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에서 가까운 도시에도 연극을 공연하는 근사한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도 아마 요셉과 마리아의 손을 잡고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가신 적이 있었으리라. 당시의 종교인들이 하는 행태가 예수님의 눈에는 관객들 앞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1). 당시 종교인들은 마치 연극배우가 관객 앞에서 연기하듯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경건한 종교행위를 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기를 좋아했다.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고 경건하고 신앙이 좋은지를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존경 받고 싶어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유대백성들로부터 존경 받고 경건하다고 인정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그들에게는 족쇄가 되었다.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다 보니 더 존경 받고 싶고, 인정을 받다 보니 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존경 받고, 더 인정받기 위해서 배우처럼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참 불쌍한 사람들이 목사님들이다. 그렇게 거룩하거나 경건하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다지 권위도 없으면서 괜히 권위 있어 보이려고 목에 힘주고 목소리를 깐다. 주위에 이런 목사님들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목사야말로 종교배우가 되기 쉽다. 목사라는 사회적 신분과 위치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어떤가? 내게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배우의 냄새가 없는 것일까?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가 없다. 

지혜문서 중 하나인 전도서 7장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하는 자와, 지나치게 지혜로운 자가 되려는 것은 스스로 패망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어느 인간이 진정한 의인이며, 어느 인간이 참된 지혜자가 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도 없고, 가끔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자도 없다(전 7:19, 22).

인간은 무대에 서는 연극배우가 아니며, 신앙인은 거룩한 무대에서 경건과 의를 노래하며 사는 종교배우가 아니다. 신앙인은 주어진 인생무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병원에 입원해 보면, 온갖 환자가 다 있다. 환자끼리 서로의 병을 흉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병원이란 원래 병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들이 병자들임을 알기에, 병원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동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준다. 누군가가 완쾌되어 퇴원하게 되면,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자신도 언젠가는 완쾌되어 퇴원할 것을 기대하면서.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필요 없듯이, 의인에게도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마 9:12). 그런데 영혼의 병동에서는 상대방의 병을 흉보고, 서로 자신의 의와 지혜를 자랑한다. 

교회는 영혼의 병동이다. 교회는 영혼을 앓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못난이들이 모인 곳이다. 영혼의 치유를 필요로 하는 못난이들과, 영혼을 치료받고 있는 못난이들이 모인 곳이다. 서로를 동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해가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함께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못난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종교배우란 자신에 대해서는 눈 먼 자가 되고, 남에게는 눈 뜬 자가 되는 것이다. 종교배우들이 가득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온다.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유독 못난이들이 그리운 날이다. 못난이들 틈에서 살고 싶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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