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인생항해(행 27:20-2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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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인생항해(행 27:20-2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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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뉴스에 보면 요트로만 대양을 횡단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중에는 1만 5천 km가 되는 태평양을 130일 만에 횡단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장장 13개월 동안이나 태평양 바다를 표류하다가 구조된 한 멕시코 인에 대한 뉴스가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2012년 12월 25일, 친구와 함께 상어를 낚기 위해 보트를 타고 멕시코를 떠났다가 13개월을 표류하다가 지난 1월 29일에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살기 위해 맨손으로 새, 물고기, 거북이를 먹고 생존을 하였습니다. 

보세요. 똑같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했지만 어떤 항해는 도전을 주고 인생의 자산이 되는 반면, 어떤 항해는 아무 의미도 없이 큰 ‘상처’만 남기는 항해도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다와 같은 인생을 항해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 항해를 마쳤을 때 어떤 인생은 다른 이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주는 인생이 있는 반면, 어떤 인생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시간만 허비하다가 깊은 상처와 후회 속에 끝나버리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인생항해를 거룩하고 아름다운 항해로 만들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인생 항해라는 제목을 가지고 몇 가지로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 사명의 인생 항해가 되어야 합니다.  
배가 목적 없이 앞으로만 가는 것은 항해가 아니라 표류입니다. 항해가 되려면 분명한 목표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과 사명이 없는 인생은 나침반이 없이 바다를 마냥 표류하는 배와 같은 것과 다름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항해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선다’는 것은 가이사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의 로마행 항해는 사명의 항해였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24절)”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에게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서 14일간이나 시달려 구원의 소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배안의 사람들이 이대로 항해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항해는 사명의 항해였고,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절대 파선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인생의 광풍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아무리 큰 혹독한 시련으로 죽을 것만 같아도 사명을 이루기까지 주님이 붙들어 주시고 풍랑을 능히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인생항해를 살아가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빛으로 서야 합니다. 
어둠 속을 항해하던 한 군함이 바다에서 불빛을 발견했습니다. 함장은 그 배에 “충돌할 수 있으니 20도 각도로 경로를 변경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무전을 받은 쪽에서 “당신 배가 20도 각도로 변경하라”고 답신이 왔습니다. 함장은 다시 “나는 함장이다 속히 바꿔라”고 무전을 보냈습니다. 상대방은 “나는 2등 항해사이다. 빨리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선장이 화가 나서 “여기는 군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상대의 응답이 왔습니다. “여기는... 등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이자 의무가 있다면 빛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곧 빛입니다. 등대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빛은 그 빛을 비출 때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비추기를 싫어하고 자꾸 감추고자 한다면 그 빛은 빛일 이유가 없습니다. 요나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빛으로 부르시고 니느웨로 가서 빛을 비추기를 명령하셨지만, 그는 빛이기를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창에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그랬을 때 배안의 이방 사람들이 그를 찾아내어 흔들어 깨우고 꾸짖었습니다. 보세요. 빛이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숨으니까 세상 백성들에게 책망을 받고 수모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몸이었지만 빛의 역할을 합니다. 그는 항해 전에 배가 당할 어려움을 미리 예고합니다. 배 안의 사람들은 다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선장도 선주도 항해에 닥칠 큰 위험을 못 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걸 미리 보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빛으로 부르셨고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의 말대로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배 안의 모든 사람이 초죽음이 되어 다 쓰러져 있을 때 바울은 “가운데 서서” 배 안의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는 위로와 구원의 확신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환난을 통해 지경이 넓어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복이 있다면 지경이 넓어지는 복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보세요. 그들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지경이 넓어지는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경을 넓힐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과 환난을 이기는 자에게 지경을 넓혀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울을 보세요. 처음에 그가 항해의 위험성을 얘기했을 때 배 안의 사람들이 콧방귀도 안 뀌었습니다.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11절)  바울의 지경이 어떤가요? 지극히 보잘 것 없죠. 아무도 인정하지 않죠. 

그런데 어마어마한 광풍이 십사일 간을 몰아친 것입니다. 이 광풍으로 배 안의 사람들은 다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바다에 대해 자부하던z 선장과 선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오직 바울만 배 안에서 구원의 확신과 미래의 소망에 대해서 담대하게 입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 안전하게 한 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지경이 넓어진 것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바울에게는 어떤 기회가 되었습니까? 지경이 넓어지는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미국에 헤피네스 존스(Happinessce Jones)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두뇌가 명석했고, 특히 피아노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16세에 텍사스 대학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어느 날 그만 손목을 다친 후 손가락에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소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음악의 자질을 주셨는데 손에 힘이 없으면 다리로 연주할 악기를 찾아야지. 아 그렇다. 오르간이 있지 않은가!" 해피네스는 오르간 페달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오르가니스트로 대성하였습니다. 

지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유라굴로를 만났습니까? 그를 통해 나의 삶의 지경을 넓히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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