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61) - 십일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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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61) - 십일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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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다 보면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고, 목회라고 해서 딱히 더 어렵다고 말할 수도 없다. 세상 일이나 목회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목회는 어려움의 성질이 조금 다르다. 설교에 대한 부담감은 그 중 하나다. 

인간관계는 유리그릇과 같아서 잘못 다루면 깨지기 쉽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말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목회자는 설교말씀으로 성도들을 만난다. 설교가 때로는 위로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거룩한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엉뚱하게 상처를 받는 분이 생기기도 한다.

가급적 성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설교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썩 하고 싶지 않은 설교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듣고 싶어하는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교민경제가 어렵고, 이민생활이 힘들다. 많은 성도들이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여러 가지 관계의 문제 등으로 힘든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분들에게 헌금 얘기를 설교 중에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아직 헌금설교를 한 기억이 없다. 그러다 얼마 전에 한 번쯤은 헌금의 의미도 바르게 알려줄 겸, 또 마침 그 날 성경본문이 물질에 대한 욕심에 관한 내용이어서 설교 중에 십일조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설교 중에 한 분이 일어나 나가 버렸다. 주일예배 때 설교 후 기도 중에 조용히 사라지던 분이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나오던 분이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헌금 얘기가 나오자 잠시 듣더니 바로 나가는 일이 있었다. 혹시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었는데, 그 후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교인이 한 명 더 오고, 안 오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십일조는 교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십일조의 의무를 강조하는 내용도 있고, 십일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있다. 심지어는 십일조는 이단이라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십일조는 의무인가, 이단인가? 십일조는 의무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의 한 형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십일조가 신앙고백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전존재가 하나님의 것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나의 생명과 삶과 내가 가진 재능과 재물과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요, 중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며, 주인이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신 구원의 주인이시다. 그런데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마음과 삶으로는 자신이 주인행세를 하려고 한다. 하인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막강한 능력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하인님이 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욕심이 숨어있다. 겉으로 어떤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속 마음에는 자신의 것을 움켜쥐려는 욕심이 숨어있다. 가룟 유다의 마음이 이것이다. 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매우 비싼 향유를 붓는 것을 보고,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낭비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요 12:5). 그러나 유다의 실제 속마음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데 있지 않고, 돈에 대한 더러운 욕심에 있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13장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태어난 모든 것을 내게 바쳐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사람이든 가축이든 태에서 처음 난 것은 모두 내 것이다."(출 13:2, 바른성경)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니, 처음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처음 것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 큰 자식만 하나님의 것이고, 둘째부터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뜻인가? 아니다. 처음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은 나머지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다. 처음 것은 뒤따르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은 나머지도 모두 드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십일조도 같다. 십일조란 단순히 십 분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하나’란 말은 ‘첫 째’라는 뜻도 있다. 또 ‘열’은 전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십일조의 참뜻은 나의 가진 모든 것을 대표해서 그 중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십일조는 단순히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고백만이 아니다. 십일조에는 우주와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라는 기본적인 관념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땅과 그 소산이 하나님의 것임을 마음으로부터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십일조의 기본 의미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며,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주님께서도 눅 12:34에서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죄인의 회심은 반드시 지갑의 회심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헌신은 반드시 물질의 헌신과 함께 이루어진다.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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