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62) - 겟세마네의 진실과 역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62) - 겟세마네의 진실과 역설

정원교회 0 1931
인생을 살다 보면 신나고 좋은 일도 많지만, 힘들고 죽을 것 같은 때가 더 많다. 어차피 한 평생 살다 가는 인생, 이왕이면 돈도 왕창 한 번 벌어보고, 세상에서 진귀한 음식도 실컷 먹어보고, 세계일주도 하면서 신나게 살아보면 좋겠다. 그렇진 못하더라도, 돈에 쪼들리지나 않고, 몸도 마음도 편하게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돈도 넉넉하게 주지 않으시고, 몸도 마음도 편하게 살게 복을 주시지 않는 것 같다. 돈은 늘 부족하고, 몸도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아프고, 마음도 그다지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불행하고 비참해 보이는 삶 가운데서도, 오히려 놀라운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여러 번 옥에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아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복음을 전하느라 수고하고 애쓰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굶고 춥고 헐벗기까지 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을 것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 안에서 삶의 역경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삶을 살았다. 

바울 신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다.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때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기도를 아버지께 드리셨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4-36)

마치 죽음이 두려워 십자가의 자리를 면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신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이를 예수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해한다. 예수님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셨다? 그러나 이는 인간적인 순진한 생각이다. 주님의 고통은 보다 깊고 높은 영적 차원에서 다가갈 때 이해할 수 있다.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아빠 아버지’라고 하셨는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는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왜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으며, 어째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부르짖으셨을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부와 성자로서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십자가에서는 죄를 심판하시는 아버지와 죄인으로서 버려지는 아들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로부터 심판 받는 형벌과 버림 당하는 고통은 인간의 모든 자각과 상상력을 동원해서도 측량할 수 없는 우주적 고통이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바로 이 엄청난 우주적 형벌에 대한 고통을 이겨내시기 위한 간구였다. 성부로부터 버림 당하고 저주받는, 영적으로 완전히 관계가 끊어지는 형벌의 고통이 너무나 크셨기 때문에,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겟세마네 기도의 의미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같은 기도를 세 번씩이나 드렸던 것이며, 천사가 나타나 힘을 더했던 것이고,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질 정도로 기도하신 것이다(눅 22:43,44).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형벌을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요 12:28). 성자께서 십자가에서 버림 받으시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성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신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역설적인 영광인가! 창세이래 가장 위대한 십자가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주님께서는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2:30). 독생자를 심판하시고, 형벌의 십자가에 버리시면서 성부께서 받으시는 역설적 영광의 초점은 바로 죄인 된 우리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그 자리에, 성자를 버리시는 성부의 영광이 있다니! 

그 영광은 성부께서 성자를 유기하시는 아픔의 영광이다. 그 영광은 성자께서 우주에서 가장 깊은 어둠과 절망의 자리로 떨어지시는 고통의 영광이다. 그 영광은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영광이다. 이것이 견딜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아버지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성자를 버리시면서까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아버지의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버지의 사랑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배어있음을 우리는 안다. 아버지의 손에는 주님의 붉은 피가 묻어있음을 우리는 안다. 아버지께서는 그 피 묻은 손으로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이제 그 무엇도, 어떤 환난과 역경과 고난도 아버지의 피 묻은 사랑의 손에서 우리를 앗아갈 수 없다. 그 피는 우리를 향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에는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한량없는 사랑과 아픔과 눈물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 안에 뜨겁게 살아있다. 십자가에서 뿌려진 주님의 붉은 피는 지금도 우리 안에 뜨겁게 흐르고 있다. 도저히 흐려질 수도 없고, 식을 수도 없는 주님의 피다. 그 피는 삶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성도들의 힘과 능력의 원천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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