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눅 15: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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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눅 15: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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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우리나라 모 방송사가, 명절이 되었지만 고향도 가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귀한 선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가족들의 영상을 찍어서 보여 준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이 외국인들의 고국까지 가서 가족들을 찍어 가지고 온 것입니다. 보고 싶던 고국의 가족들이 화면에 나와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니까 눈물이 죽 흐릅니다. 외국에 나와서 그간 고생하고, 때로는 서럽고, 너무나 외로웠는데 가족들의 얼굴을 영상으로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방송국이 아주 기가 막힌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한 청년에게는 가족을 영상으로 보여준 다음에 한 방으로 안내를 했는데, 청년이 방안을 들어서는 순간 너무 놀라 말을 못합니다. 방안에는 저 이역만리 고향에 계신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너무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 감격한 나머지 말을 못합니다. 아들을 만난 어머니도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을 얼싸안고 “아가야, 내 아가야”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청년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방송국을 향해서 몇 번이고 하는 말이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다른 누군가가 가장 원하고 그가 가장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은 내게도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는 밋밋한 신앙이 있는가 하면, 그 자체가 은혜요 감격 그 자체인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은혜와 감격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비결은 단순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신앙이 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교회나 학교에서 노래나 춤을 가지고 공연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재능과 끼가 많아서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부모의 눈길은 다릅니다. 아무리 잘 부르고, 잘 추는 아이가 있어도 부모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한 곳입니다. 바로 내 자녀입니다.

우리 아버지이시니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요? 물론 자녀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눈길이 머뭅니다. 그러나 자녀인 우리보다 더욱 더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고 하나님의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께 잃어진 영혼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비유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한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마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안 목자의 마음은 99 마리에 있지 않습니다. 목자의 온 마음과 신경은 지금 없어진 그 한 마리에 가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캄캄한 밤에 혼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벌 떨고 있을 잃은 양 한 마리를 생각하며 목자가 달려갑니다. 어떻게든 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피곤도 잊고 배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목자의 눈에는 다른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고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잃은 양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 비유를 드셨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이 목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주일이면 교회 와서 예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보시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는가? 지금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와야 하는데,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에서 헤매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가 얼마나 기뻐했는가?’입니다. 5절 보면 목자는 잃은 양을 찾고 즐거워 어깨에 메었다고 말씀합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양을 실제로 보니까, 하얀 색도 아니고 냄새도 말도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목자는 양의 이런 더러움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비유에 나오는 양은 상처 투성이였고 피도 흘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은 그 자체가 기쁜 나머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잃었던 영혼이 세상을 헤매다가 더러워지고 온갖 상처로 찢기고 피 흘리며 돌아온다 할지라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잃었던 영혼을 다시 찾은 그 자체가 기쁘고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기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6절에 보니까 양을 찾은 것 때문에 친구와 이웃을 다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양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당연히 기쁘죠. 그럼에도 이 목자의 기쁨은 아무래도 좀 도가 지나친 것 같아요. 양 한 마리 찾았다고 잔치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도 이건 좀 괜찮습니다. 8-10절에는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가 나오는데 여기는 더 심합니다. 9절 보면 동전 하나 찾았다고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왜 예수님은 이 비유들을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사랑이 바로 하늘 아버이신지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입니다.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기쁨이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가장 기뻐하시는 게 뭔가 하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3. 이제는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뭔지 알았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야 합니다.

청년 때 폐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본래 신앙인이었던 그가 병으로 지방 요양원에 있었을 때, 동료 환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상대방이 그 날로 믿겠다는 말을 듣고는 그게 너무너무 기쁜 나머지 그 날 밤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리기를 “너, 정말 기쁘냐?” “너무 기쁩니다.” 그가 감격하여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병이 나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니까 내 삶의 문제와 고통이 그 기쁨 가운데 그냥 녹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와 감격이 넘치는 신앙의 비결인 것입니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비결은 달리는 것입니다. 달리지 않고 서면 쓰러지는 것이 자전거입니다. 교회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신앙은 두 개의 바퀴가 계속 굴러가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나는 기도요, 다른 하나는 전도입니다. 이 두 바퀴가 열심히 굴러갈 때 교회도 우리의 신앙도 쓰러지지 않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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