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65) - 일장춘몽과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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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65) - 일장춘몽과 왕따

정원교회 0 2851
아내와 막내는 큰 딸을 보러 미국 LA에 가고 나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큰 딸이 아니라, 맏사위 감을 보러 간 것이다. 지난 연말에 시드니에 있는 둘째 딸 집에 모두 모일 때도 나만 남았었는데, 이번에도 나만 홀로 남았다. 이래저래 나만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다. 왕은 따로 논다고 해서 왕따라고 한다는 말도 있는데, 까짓 것 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왕처럼 차도 신나게 몰았다. 너무 기분을 냈나? 차가 언덕 아래로 굴렀다. 다행히 몸은 다친 데가 없는데, 차가 엉망이 됐다. 큰 일이다. 차도 차지만, 집사람한테는 뭐라고 말하나? “당신은 혼자만 놔두면 사고치는 사람이라니까. 도대체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야” “oh, no~~~ 안돼~~” 하고 외치다가 잠을 깼다. 꿈이었다. 휴~~ 꿈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창 밖을 내다 보니 차는 멀쩡하게 잘 있었다. 

꿈 속에서는 꿈이 꼭 진짜 같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면 꿈은 잠자는 동안 있었던 가상현실일 뿐이다. 인생도 지나고 나면 잠깐 꾼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도, 꿈 많던 청춘도 모두 꿈처럼 지나갔다.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될 때, 아마 한 평생의 인생도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생은 꿈이다. 지나고 나면, 현실인지조차 헷갈리는 꿈이다. 꿈처럼 흘러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인생은 현실이다. 살아온 현실이고, 살아야 할 현실이다. 

일장춘몽이란 말이 있다. 인생이라는 게, 봄에 꾸는 한 바탕의 꿈과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서,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잠시 있다 없어질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 일장춘몽의 삶이다. 하룻밤의 꿈처럼 덧없이 사라질 인생을 마치 영원한 것처럼 사는 삶이 일장춘몽의 헛된 꿈을 꾸는 삶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히 11;3).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나그네란 어느 한 곳에 눌러앉아 살지 않고, 잠시 지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믿음의 사람들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 것에 목숨을 걸며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치 인생을 하룻밤 꿈 정도로 여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크게 미련을 두지 않고 왕따로 사는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영생이라는 너무나도 분명한 나라가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생이라는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서의 한 평생 인생이라는 게 하룻밤의 꿈도 되지 않는다.

오늘날 나그네처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신자들은 많아도, 나그네는 드문 세상이다.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마음으로는 영생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이 전부인 삶을 산다. 영생은 나중 일이고, 눈에 보이는 현재의 삶이 전부다. 하룻밤의 헛된 것에 목숨을 거는 일장춘몽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왕따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하늘의 고향이 자신들이 살아야 할 영원한 집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세상의 헛된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의연하고 초연하게, 그러나 영원한 나라라는 확실한 목표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자신의 인생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세상 삶에 크게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나그네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 〔표준새번역성경〕

13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도시를 마련하신다. 영생을 믿고 왕따라는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기다리고 있고, 일장춘몽의 헛된 꿈을 쫓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버림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살게 될 하늘나라의 가치관과 이 세상의 가치관은 너무나 다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마치 잠시 꿈을 꾸는 것처럼 낯선 것이다. 이 세상은 철저하게 인간이 왕인 나라다. 인간이 왕인 나라란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설사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을 꽃 피우고, 도덕주의를 부르짖고, 복지국가를 건설한다고 해도, 이 세상은 인간이 왕인 나라다. 하늘을 향해 욕심이라는 바벨탑을 쌓는 나라다. 이런 세상에서 참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왕따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그네가 되어 왕따의 삶을 살 것인가, 일장춘몽의 삶을 살 것인가?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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