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대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7, 행 20:22-24)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할 수 있는 대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7, 행 20:22-24)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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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된 한 노인이 인생을 돌아보면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시간을 계산을 해 보니,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노는 데 15년, 밥 먹는데 6년, 사람을 기다리는 데 6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고 유한한지 모릅니다. 이 유한한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적과 사명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가치 있는 목적과 사명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교우 중의 한분이 저에게 교회 집사님 한 분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은 제게 믿음의 엄마입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자 대답이  “오늘 제가 이렇게 교회를 나가며 신앙을 갖고 있지만 그 분이 아니었다면 오늘 제가 이렇게 안 되었습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나를 낳았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칭찬과 상급이 있을까요? 성도에게 있어서 나중에 남는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남는 건 바로 전도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한 영혼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성도는 왜 전도해야 하며 어떤 마음으로 전도할 때 능력 있는 전도가 될까요?
  
1.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제가 첫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승용차가 필요했던 저에게 제 모 교회에서 작은 중고차를 헌신해 주셔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그 후, 차가 하나 더 생겨서 ‘타던 용차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나도 거저 받았으니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거저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때 교회에 차가 꼭 필요한 권사님이 계셔서 그 분에게 드렸더니 그걸 그렇게 좋아하고 잘 쓰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 교회를 사임하면서 권사님이 선물을 건네시면서 “목사님, 제가 이 차를 탈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차를 탈 때마다 “언젠가는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게 무엇입니까? 부채 의식입니다. 부채 의식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빚진 자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된 우리는 무엇보다 복음의 부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영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까? 만약에 영생이 경매에 나온다면 수 백조를 주고라도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운 구원, 즉  영생을 이미 소유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치른 대가가 무엇이냐?’ 는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이 영생을 소유하기 위해서 얼마를 지불했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영생을 위해 지불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럼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영생 것은 거저 받은 것입니다.

본문14-15절에 바울은 바로 복음의 부채 의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성도인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2.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교회들마다 전도를 위해 전도 교육, 전도 특강, 전도 훈련 등을 행합니다. 다 전도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보다 가장 강력한 전도의 동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이라도 맛보고 체험하면“전도 하지 말라.”고 말려도 그 사람은 전도합니다. 전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내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그 하나님의 은혜가 화산의 용암 분출하듯이 막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무슨 지식이나 요령 갖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행 20:24에서 바울이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은 바울이 자기 생명이 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 안 귀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버릴 만큼 자기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24절에 나오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어요.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 믿는 자들을 가장 앞장서서 핍박하고 포악하게 굴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볼 때 자기는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자신을 불러 주시고, 품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만 하면 그 가슴 안에서 복음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3. 성령께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주시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행 1:8에 의하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권능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바로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주시는 권능 가운데 가장 큰 권능이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의 권능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하실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증거는 사랑입니다. 성령이 충만케 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긍휼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 20:22에 보면 성령에 매인 사도 바울의 모습이 나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사도 바울의 전도는 성령에 매인 전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고자 하는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환영과 환대가 아니라 결박과 환난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행 20:23)” 

요컨대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을 당할지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하고 환난을 당할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합니까? 성령에 매이고 보니까 영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영혼들입니까?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모르고 율법에 매인 채로 죽어가는 자기의 동족들, 그 영혼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에 매이면, 영혼이 보이고,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붙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에 매이면 전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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