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67) -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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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67) -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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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지난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배에는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이중 325명이 안산시 단월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한참 나이의 무수한 청춘들이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참사를 당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미숙한 항해술과 과다하게 적재된 화물, 선박의 무리한 구조변경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18 년 된 배를 구입해서 리노베이션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때, 객실 수를 늘리기 위해서 원래 4층짜리 배를 5층으로 개조하고, 배 뒤편을 증축했다고 한다. 배의 높이가 높아진 만큼, 무게 중심이 위로 올라가고, 배는 그만큼 불안전해진 것이다. 배가 기울어졌을 때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이 떨어져 위험도가 그 만큼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배를 증축한 것이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적재 화물량을 2437t에서 987t으로 줄이고, 배의 아랫부분 평형수를 1023t에서 2030t으로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에 실린 화물과 차량 등 총중량은 987t보다 무려 세 배 이상이 되는 3608t이나 됐다고 한다. 

이렇게 안정성이 떨어지는 배를 물살이 센 지역을 통과하면서 급하게 방향전환하려다 배가 중심을 잃고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배는 2012년 9월 퇴역한 배를 수리해서 2013년 3월부터 사용해왔다고 한다. 불과 일년 만에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위험은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세월호의 끔찍한 참사소식을 접하면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혹시 이처럼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우리도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영생의 나라에 무사하게 이를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해가는 배와 같다.

교회에 널리 퍼져있는 심각한 오류 중 하나가 이신칭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죄인이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신칭의의 실제적 국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이신칭의와 거듭남은 불가분의 관계다. 복음의 핵심인 이신칭의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떠 안고 죽으심을 믿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6장 3-5절 〔표준새번역성경〕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죄만 떠안고 죽으신 것이 아니다. 죄인 된 우리를 떠 안고 죽으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 죄인 된 우리가 함께 달려, 함께 죽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 복음의 핵심내용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의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사실로 고백되고, 나의 사건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죄로 더럽혀지고 죄에 찌든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깨끗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거듭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 하자, 베드로가 극구 사양하였다. 주님께서 죄인 된 자신의 발을 씻어주신다는 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놀라서 손과 머리도 씻어달라고 하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목욕은 물론 거듭남을 말한다. 거듭난 자, 즉 목욕을 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목욕한 자라도 주님께서 발을 씻어주셔야 주님과 상관이 있는 자다. 목욕을 했다고 해서 발을 씻지 않는 사람은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미 목욕해서 전신이 깨끗해진 사람이라면, 발에 묻는 때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인생광야를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목욕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일 인생광야를 걸으려면 어쩔 수 없이 발에 때가 묻을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문제는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서 짓는 죄를 보지 못하는 데 있다. 안전불감증은 세월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잘못된 믿음, 잘못된 확신 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죽음의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며 사는 지도 모른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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