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은혜를 소유하라(마 28:1-10)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부활의 은혜를 소유하라(마 28:1-10)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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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도에서 한 종교를 창시한 사람의 뼈가 발견되어서 그 신도들이 흥분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그 뼈를 진열한 것이 시가를 행진할 때 신도들은 그 앞에 엎드려 큰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한 선교사님이 그랬답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를 하나라도 발견했다면 우리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세계의 많은 종교의 창시자들이 훌륭한 삶을 살고 값진 교훈들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종교들에 없고,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고 33년을 사시다가 마지막에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거기서 멈추었다면 오늘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컨대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교회도 없고 우리의 신앙도 다 헛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은혜를 경험하는 절기가 부활절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의 마지막에 오는 게 부활절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을 지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마음이 무겁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고난 끝에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제게도 소망이 생깁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부활과 승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부활절에 주시는 특별한 은혜요 은총입니다. 부활의 은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부활은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부활주일은 큰 기쁨의 날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주일은 모든 눈물을 거두어 가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성 금요일은 눈물과 통곡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에 오르실 때, 많은 이들이 따라오며 울었습니다. 골고다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그들 마음에는 바로 예수님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사흘 째 되는 날 새벽이 되었습니다. 본문 1절에 예수님의 시신을 보려고 무덤으로 올라가는 여인들이 나오는데 그들 마음은 큰 슬픔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신 예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런 여인들 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집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땅이 움직이며 큰 지진이 나면서 보니까 천사가 내려와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내었다고 했습니다. 여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때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셨던 곳을 보라” 

이게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말씀하셨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무덤 안을 보니까 세마포만 있고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이 때 여인들이 어떻게 했는가 보세요.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 새” 여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큰 슬픔과 절망으로 울면서 무덤에 올라왔는데 돌아갈 때는 그게 아닙니다. 그들의 슬픔과 절망은 바뀌어서 무서움과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기쁨의 날입니다.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슬픔을 거두어 가시는 날입니다.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시는 부활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2. 부활은 진리입니다. 
지난 주간은 우리 온 국민이 선박의 침몰로 비탄 속에 지난 한 주간이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생존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을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식을 뛰어넘어 한 생명이라도 살아서 귀환하는 기적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적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대서양에서 선박이 침몰했을 때 60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수부가 들어가서 손을 내 미니까 손을 움직여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기적입니다.  

부활에서 대해서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차원에서는 부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과학으로는 생명이 일단 끊어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 역시 믿음의 차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온 우주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부활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기독교를 지탱하는 두 가지 기둥이 있는데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즉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한 삼일 만에 부활했다고 하는 진리가 기독교를 2천년 동안 지탱해왔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은 무서운 박해를 알고 있습니다.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고 끊는 가마에 들어가고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받으며 죽어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 부활은 너무 확실한 사실이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 부활하신 것을 목도했습니다. ‘나도 죽으면 예수님처럼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떠나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사실을 넘어 진리이며,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3. 부활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셨나요? 이 질문을 하면 유치부 아이들도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어요.” 라고 답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의 목적에 대해서 바울 사도께서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롬 4:25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요컨대 부활은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깊은 사랑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퍼전 목사님이 하루는 한 소년이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새를 어떻게 할래?”라고 묻자, 소년은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새를 사서 자기의 소유로 삼은 게 아니라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이틀 후 부활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하기를 “우리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는 존재가 누굽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라는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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