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 때를 이기는 비결(살후 2:1-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환난의 때를 이기는 비결(살후 2:1-17)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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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수혈할 피와 약이 턱없이 모자라니까 많은 부상병들이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군의관이 부상병을 보면서 “이 정도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밤만 넘기면 살 거 같아.”라는 말을 비몽사몽간에 들은 부상병들은 대부분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이 부상병들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바로 내일이라고 하는 소망이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교훈은 내일을 맞이하려면 오늘 밤이라고 하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일이나 승리 전에는 어려운 고비가 있습니다. 고비라는 것은 결코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비를 잘 이기면 그 뒤에 승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이 바로 비슷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주의 날이라는 큰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주의 날을 대망하면서 어려움을 잘 참고 이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의 날 전에 있을 큰 고비와 어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주의 날이 있기 전 큰 어려움은 세 가지, 즉 미혹과 배교와 불법의 사람의 출현이라고 말씀합니다. 미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현혹되어 거짓과 멸망으로 가는 것이고, 배교는 진리와 신앙을 등지는 것이며, 불법의 사람이란 자기를 높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주의 날이 있기 전에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말하면서 그것을 대비하고 이기게 하기 위해서 본문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큰 고비와 역경을 당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능히 넘어갈 수 있을까요?

1. 환경에 의해 동요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2절에서 큰 영적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24장에서 사도바울과 비슷한 경고를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마 24:6)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실패하고 넘어지게 만드는 습관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마음이 쉽게 동요하고 크게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혹 어떤 분들은 ‘문제를 당해서 마음이 동요되고 두렵고 절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도, 바울도 강력하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이 가장 많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이 아니라 쉽게 동요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애굽 군이 쫓아올 때, 그들은 사색이 되어서 동요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절망한 나머지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도 그랬고, 먹을 것이 빈약하다고 여길 때도 그랬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없을 때도 쉽게 동요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결국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에 쉽게 동요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한 결과입니다. 

왕하 6장에 보면 아람의 군대가 도단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의 성읍을 에워쌌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일어나 그 광경을 보고서는 심히 동요하며 두려워서 엘리사에게 와서 울부짖을 때에 엘리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에워싼 군대의 위협 앞에서도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엘리사는 군대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엘리사는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는 어떻게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영적으로 볼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밝히 눈을 떠서 볼 것을 보니까 그에게 와진 어떤 외적인 위협도 그의 마음을 흔들거나 두렵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우리도 쉽게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 볼 것을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문제를 만나서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영적 위기의 때에 이미 내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라. 
영적인 큰 고비를 맞이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이미 주신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5절 보면 이제까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던 바울이 좀 다른 어조로 말씀하는 것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 구절을 메시지 성경으로 보면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 모든 일을 낱낱이 짚어 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여러분의 기억력이 그렇게 짧습니까?” 들어 보면 바울이 아주 참을 수 없어 하는 어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에게 격노하거나 비하하는 말씀이 아니라 바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하는 것은 이미 일러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주의 날이 오기 전의 일들에 대해서 거듭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경고하였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혹이 다가오고 배교가 이루어지고 적그리스도가 출현한다고 할지라도, 견고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미 일러준 말씀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교회에 나타난 문제 중 하나는 새신자들이 늘지 않고 교인들이 마치 유목민처럼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인들의 대부분은 좀 더 새로운 말씀이 없나, 좀 더 감동적인 말씀이 없나 이 교회 저 교회 헤매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더 새로운 말씀, 더 감동적인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주신 말씀, 한 말씀이라도 그 말씀 안에 거하고 내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3. 내가 받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에 깊이 뿌리를 박으라. 
바울은 13절에서 17절까지 감사와 권면으로 마무리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3절)

요컨대 바울이 감사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확신하기를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택하셨고, 성령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셨고,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확신하고 나니까 그게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어떤 영적인 위기와 환난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견고한 기초가 무엇인가?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겁니다.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는 과연 구원받은 사람인가? 그 사실이 확신으로 다가오십니까? 우리 마음 깊이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나의 자격, 나의 공로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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