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69)- 가만히 있으라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69)- 가만히 있으라

정원교회 0 1933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허탈감에 빠져 있다.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부가 과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은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기에, 국민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답답한 분노로 마음이 무겁기 그지 없다.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뇌리에 계속 맴도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선내 방송이다. 배가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데도,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승객들에게 취한 조치라는 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후 취한 그들의 행동이다. 근무복을 벗어버리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자신들을 구해줄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세월호 주위엔 구조선이 해경 경비정 한 척뿐이었다. 만약 탑승자들이 선실에서 나온다면, 어린 학생들부터 구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신들이 구조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자신들을 구할 해경의 구조선이 작은 경비정 1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승무원들뿐이었다. 결국 그들의 바람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고 옷을 갈아입은 선박직 승무원 15명은 완벽하게 구조되었다.

배의 선장과 승무원이란 사람들이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인 승객들을 죽음의 자리에 묶어놓고, 자신들의 목숨을 먼저 구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순진한 학생들은 곧 닥치게 될 죽음의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배가 전복되고 그들이 있던 선실에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왔을 때, 어린 학생들 심정이 어땠을까?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살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도 박탈당한 채, 배반감과 절망감과 분노 속에서 이렇게 희생되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인재가 아니라 학살이다. 침울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자신에게 눈을 돌려본다.

이 세상에 세워진 하나하나의 지상교회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고, 담임목사는 배의 선장과 같다. 선장은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성도시절에 내가 만난 교인들은 목회자를 선장으로 생각하기는커녕, 우호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목회자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져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당신에게 우리의 영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희생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런 뜻이 아닐까?끝까지 승객들을 지켜주고 자신을 희생하는 선장의 모습을 목회자에게서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회자들에게서 세월호의 선장처럼 무능하고 비겁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자기 앞가림 하기에 바쁜 목회자, 교인들의 영혼이 위험에 빠져있는데도, 괜찮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는 목회자가 세월호 선장과 같은 목회자다. 그렇다면 교인들은 어떤 목회자를 원할까?

배가 침몰할 때 끝까지 배에 남아있는 목사, 성도들이 위험할 때 “가만히 있지 말고, 뛰어나오라”고 말하는 목사일 것이다. 끝까지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목회자일 것이다.

선장을 신뢰하지 않는 배는 위험하다. 사실 교회의 실질적인 선장은 주님이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사도들을 세우시고, 그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나가셨다. 목회자를 감히 사도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목회자는 사도적 사명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도들은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들은 주의 나라, 주의 몸 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내 드렸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사도적 사명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선장이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지난 2일에는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근처에서 전동차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안내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서 비상문을 열고 탈출했다고 한다. 세월호로 인한 정신적 트로마가 초래한 결과다.

42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번 사건은 신호기가 오작동하면서 신호기와 연동해서 작동하는 자동정치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나흘 전에도 신호기에 오류가 생겼지만, 특별한 조치가 없었다. 또 사건 14시간 전에는 신호기 고장이 모니터상에 발견되었지만, 이를 ‘통상적인 오류’로 생각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사고 당시엔 고장 난 신호기가 '정지'나 '주의' 신호 대신 '진행'을 뜻하는 ‘파란 등’을 표시하고 있었다.과연 나는 성도들의 안전을 잘 점검하고 있나,,, 나는 사도적 사명으로 배를 운행하는 선장인가,,, 어쩌면 나 역시 세월호의 선장이나 역무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몸서리친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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