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 (마 18:1-9)-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 (마 18:1-9)-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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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게 자기 몸이요 신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신체를 포기하고라도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천국입니다. 본문 8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천국이란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 두 가지가 본문에 나옵니다.

 

1. 천국에 들어가려면 돌이켜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인가요? 돌이켜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어디서 돌이킨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두 가지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1) 마음의 더러워짐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놀라는 것은 사고를 조사할수록, 양파 껍질 벗겨지듯 비리와 거짓이 끊이지 않고 나옵니다. 얼마나 썩고, 얼마나 거짓되고, 얼마나 무책임했는지가 나오고 또 나옵니다. 규정이란 규정은 다 어겼습니다. 검사도 엉터리였습니다. 관계 기관도 다 썩어서 거짓을 눈감아 주고 뒷돈이 오갔습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물 위에서는 더러운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돈벌 궁리만 했다는 것입니다. 더러움 중에 인간의 마음만큼 더럽고 추한 게 없습니다. 최근 국민들이 세월호 희생을 애도하면서 ‘과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거짓과 불의도 마다않고 탐욕을 부린 결과가 너무 비참한 겁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마음의 더러워짐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2) 마음의 교만함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교만함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인에 이 교만함의 씨앗은 바로 자기 사랑,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세월호의 선장은 몇 해 전, 방송 인터뷰에서 ‘승객의 안전이 나의 행복이요 기쁨입니다.’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얘기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원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인가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아래서는 학생들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선장이 배를 버릴 수 있냐?”고 개탄을 합니다. 사람이 자기만을 사랑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일 때 얼마나 사람이 무책임해지고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더러워진 마음, 더러워진 양심에서 돌이켜야 하고, 입으로만 사랑을 이야기했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돌이키는 삶이야 말로 천국에 합당한 삶입니다.

 

2.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돌이킴만 가지고는 되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사람을 아래서 위를 올려다봅니다. 아래서 위를 올려다본다는 것은 존경심과 사랑을 갖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존경과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고 행복합니다.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거기에 천국이 있고 주님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서 낮은 자리에서 서로를 우러러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한 수도원장이 수도원이 점점 쇠락해져 가자, 한 랍비를 찾아가 수도원을 부흥시킬 방법을 물었습니다. 랍비는 “제가 조언해 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당신들 가운데 메시아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이 이 말을 수도사들에게 전했더니 다들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메시아가 있다니? 과연 누구일까?” 수도사들은 메시야가 누구일까 고민했고, 서로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놀랍게도 수도원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소문이 났고 마침내 수도원이 부흥하게 되었다. 천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낮추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할 때 거기에서 생명과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절대 의존성의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유명한 말이 ‘종교는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피조물이요 유한한 인간이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게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요 핵심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기 지식이나 자기 경험이나 자기생각을 더 의지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 의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 의존이란 모든 것에 있어서,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가족과 조상에 대해 발표를 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제각기 가족과 조상에 대해서 열심히 발표를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고향이 어디이고, 몇 대 손이고, 조상 중에 높은 벼슬을 지낸 분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가 무엇을 지내셨는지,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자랑스럽게 발표했습니다. 한참 발표를 하는데 한 아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보는 선생님이 크게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고아원에 사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히 걸어 나와서 단상에 서서는 주저하지 않고 발표를 시작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세요. 우리 아버지는 많은 자녀를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저에게는 많은 형제들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의 주인이세요. 사랑도 아주 많구요.” 당당하고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말하는 아이를 보는 선생님의 두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온 세상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치 말고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3. 순수함을 갖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아이들의 편지”라는 책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유명하신데 어째서 텔레비전에 한 번도 안 나오시나요?” “하나님께, 남자 동생 아기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할 때 부탁드린 것은 강아지였지 않나요?”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런 아이들의 사연을 읽기만 해도 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순진함과 순수함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절로 기쁨과 행복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때 묻고 불순함을 만나면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순수하고 순전함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순수함을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아이들을 통해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수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이들 속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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