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72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72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정원교회 0 2388


‘쿠오바디스’, 폴란드의 작가 시엔키에비치의 1896년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소설의 원제는 ‘쿠오바디스 도미네’로 “주여, 어디고 가시나이까”라는 뜻의 라틴어다.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로마대화재 사건을 일으켜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한다. 사도 베드로의 신변의 위협을 염려한 성도들은 베드로에게 로마를 떠날 것을 권한다. 베드로는 성도들과 함께 순교를 하려 했지만, 살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성도들의 뜻을 받아들인다. 성도들의 권유로 로마를 떠나 지중해로 가는 길에 베드로는 예수의 환영을 본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로마를 향해 오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는 놀라서 주님에게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가니, 내가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

베드로는 주의 뜻을 깨닫고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한다. 자신이 감히 주님과 같은 모양으로 십자가에 달릴 수는 없다 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주께서 곧 죽으실 것을 알고, “주여, 어디로 가나이까?”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주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는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의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로 돌아가시기 전에 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 아버지의 나라도 십자가의 의미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했다.

단지 주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죽음의 충성을 맹세하였다. “주께서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주께서 죽으시도록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 주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아끼지 않고 버리겠습니다”

이처럼 충성스런 베드로는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주님을 세 번 부인하였다. 여기서 잠시 베드로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다. 학자들은 당시 어부들이 꽤 부유했던 것으로 본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생업수단인 배와 그물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사람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부귀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주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창세 이래 바다 위를 걸어본 유일한 인간이기도 하다. 급하고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고, 주님으로부터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도 베드로였다.

주님께서는 이런 베드로를 보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이 위대한 신앙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졌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을 받은 사람이 베드로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사람이었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는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다. 실제로 베드로는 잠시 후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을 향해 칼을 빼 들고 싸우려 했다. 칼로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베어 버렸다. 그러나 주님의 말을 듣고 칼을 거두어 드렸다. 이처럼 결단력이 있고, 충성스럽고 용맹한 베드로가 어째서 잠시 후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되었을까?

배드로는 주님을 저주까지 해가며 “나는 맹세코 저 사람을 결코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다. 갑자기 두려움이 베드로의 마음을 엄습해왔다. 눈 앞에 닥친 죽음의 두려움 앞에 베드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베드로,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겠노라고 맹세한 베드로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자신의 강한 의지도, 결단력도, 결심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베드로는 이 일 후에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절감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말할 수 없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철저하게 무능한 자임을 통감하는 그 순간이, 베드로가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인간 베드로가 죽는 그 순간이, 실은 베드로가 진정 주님의 강한 손에 붙들린 자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베드로는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이제 주님을 따르는 베드로에게 두려움은 없다. 죽음도 그를 막지 못한다. 베드로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강한 베드로가 죽은 것이다. 혈기왕성하게 주님을 따라 나서고, 주님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조차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강한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는 이제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의 자리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내가 부인되는 자리다. 강한 베드로가 죽었듯이, 나의 강한 자아가 죽는 자리다. 믿음은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는 훈련이다. 내가 죽을 때, 우리도 영화 ‘쿠오바디스’의 베드로처럼 주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제가 가겠습니다”

주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가니, 내가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러 간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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