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74 )-천국과 천국의 문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74 )-천국과 천국의 문

일요시사 0 2744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마냥 살 것 같은 우리의 삶도 마감해야 할 때가 있다. 인생도 끝이 있고, 우주도 끝이 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성경의 마지막 부분으로,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창조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를 보여준다. 천지창조라는 대 파노라마의 완성과 절정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하늘과 첫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이 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핵심은 ‘새 예루살렘’이다.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을 지상에서 이루어질 완성된 교회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고,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천국’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첫 창조의 연속선상에서 창조의 완성을 이해한다.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께서 첫 창조의 세계를 버리실 리가 없다는 데 근거한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불로 소멸하시고, 창조세계를 새롭게 갱신하신다는 생각이다.

요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천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가 천국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단들의 주장이 아니라, 정통개신교 신학자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다. 그러나 지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지구는 물론이고 태양도 영원하지 않다. 영생이 어찌 유한한 지구에서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하였겠느냐?”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계신 곳, 즉 아버지의 집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성육신하시기 전에 계시던 곳이며, 부활하신 후에 돌아가신 곳이 아버지의 집이다. 지구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창조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천국을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의외로 많다.

 마지막 날 부활한 성도들이 살게 될 영원한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아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갈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집에 있는 우리의 처소’를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하늘로부터 성도들을 마중하기 위해서 내려 보내신다. 그런데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성경은 말한다.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하기라도 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영원히 살게 될 ‘새 집’을 단장해 놓고 계시다. 도대체 어떻게 단장해 놓고 계실까?

요한계시록 21장 10절 이하에 보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옥과 수정과 금과 보석으로 되어 있다. 천국이 온통 금과 보석들로 되어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온갖 귀한 것들로 주님께서 단장해 놓고 계신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문은 진주로 되어있다. 왜 천국의 문은 진주로 되어있을까?

다른 보석들은 광물질들이 고열과 고압과 같은 수많은 과정을 거쳐 형성되지만, 진주는 진주조개라는 살아있는 생명체 안에서 만들어진다. 다른 조개들은 자신 안에 들어온 모래를 토해내지만, 진주조개는 모래를 진주로 만든다. 모래가 들어오면 살에 상처를 내고, 상처 받은 살에서 분비물이 나와 모래를 둥글게 감싼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진주라는 아름다운 결정체가 형성된다. 이처럼 진주는 받은 상처와 상처의 치유라는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결정체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의 문이 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어떨까? 그렇게 본다면 천국의 문인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품으셨다. 우리는 모두 주님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래알과 같은 자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주님께 상처를 입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토해내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받아내신다. 끊임없이 죄인 된 우리를 받아주시고, 감싸주신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당하신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 세상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하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시는 고통 가운데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으시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품으셨다. 조개가 자기 몸에 상처를 입힌 모래를 감싸는 분비물은 조개의 눈물이다. 아픔의 눈물이다. 그 눈물의 결정체가 진주다. 우리는 주님 몸에 상처를 입히는 모래와 같은 자들이다.

천국의 문은 이렇게 해서 우리 죄인들에게 열리게 된 것이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고통 가운데 죽게 한 자들은 본디오 빌라도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아니다.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우리의 죄로 인해 주님의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씌어졌고, 주님의 손과 발에는 대못이 박혔으며, 주님의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죄인들로 인해 받으신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 상처를 감싼 사랑의 결정체가 천국의 문, 진주다.

천국의 진주문을 들어갈 성도들이라면, 작은 진주 하나씩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진주가 많은 아픔의 결정체이듯이, 사랑이라는 열매는 많은 아픔과 훈련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여물어간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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