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은 어디까지 왔을까? (창 12:1, 13:7-12)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내 신앙은 어디까지 왔을까? (창 12:1, 13:7-12) -광림교회 정존수목사

내 신앙은 어디까지 왔을까? (신앙 여정의 네 단계)


인생의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에 단계가 있다면, 다음 몇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어떤 단계들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슬픔을 극복하는 것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① 현실 부정의 단계: 사람들은 비극을 맞이할 때, 먼저 부정하고 부인합니다. ② 분노의 단계: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분노합니다. ③ 협상 또는 흥정의 단계: 분노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 이 위기를 해결해 주신다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 ④ 절망의 단계: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해도 아무 효과가 없으면 말할 의욕과 기력도 상실하고 절망합니다. ⑤ 마지막 수용의 단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아프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상실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슬픔을 극복하는데도 단계들이 있는 것처럼 신앙에도 단계가 있는데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부르심의 단계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 할 때 필요한 게 회원가입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어떤 분들은 교회에 등록하면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회 생활의 시작이 될지 몰라도, 참다운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신앙생활의 시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부르심의 예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지만, 아브라함의 본가는 믿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불신앙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상에 파묻혀 살던 데라 가문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게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모르고, 죄악에서 뒹굴고 있을 나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셔서 불러주신 겁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이 부르심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2. 떠나는 단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부르셨을 때 가장 먼저 명령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를 떠납니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신앙은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나중에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떠났고, 이삭은 다툼의 지역인 그랄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 애굽을 떠났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떠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떠나셔 이 땅에 오셨습니다. 떠날 때 비로소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고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않으면 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 구원의 감격을 절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 안에 신앙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우리가 무엇에서 떠나야, 하나님과 동행하고 신앙의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까?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상으로부터입니다. 또한, 본문에 보니까 “죄를 떠나라” 하지 않고 너의 고향과 친척과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나로 하여금 죄와 가까이 하게 하는 환경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을 말할 때 자리를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우리가 우상과 죄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이 뜻하신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3. 포기하는 단계

창 13장에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고향을 떠나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재산이 많아지자 아브라함과 롯 가운데 갈등이 생겼습니다. 재산도 많아지고 가축도 많아졌는데, 같은 땅을 쓰다 보니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조카 롯과 헤어지기를 결심합니다. 아브라함은 얼마든지 롯에게 삼촌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8-9)”며 자기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반면, 조카 롯은 삼촌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속없는 조카 롯은 괘씸하게도 물이 많고 비옥한 소알 땅을 택합니다. 은혜도 모르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저 조카가 원하는 대로 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세 번째 단계인 포기하는 단계를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더 높은 신앙으로 이끄실 때, 포기하는 훈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더 높은 신앙의 단계로 올리시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포기할 수 없던 것들이 포기되어집니다. 절대 넘어갈 수 없던 일들이 넘어가 집니다. 주님이 내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포기하는 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참된 구주가 되십니다.

 

4. 채우시는 단계

조카 롯은 아주 비옥하고 물이 넉넉한 소알 땅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물도 없고 척박한 땅을 차지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 마음이 서운했을 것입니다. 삼촌으로서 주장할 권리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허전한 마음을 채웁니다. 허전한 마음은 하나님이 채우시는 공간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할 때도 때로는 할 말이 있는데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 혼자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허전함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자리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임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허전한 마음을 채우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으로 채우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는 신앙의 단계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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