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실 선교 (창 14:13-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교 (창 14:13-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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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실 선교 (창 14:13-20)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피지 선교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피지에 도착하면, 우리 교회가 그간 후원했던 비전칼리지에서 일박을 할 것입니다. 둘째 날에는 내륙에 있는 마을을 찾아가 개회 예배를 드린 후에 선교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것입니다. 청년들과 중고등부가 성경학교를 진행하고, 장년들은 의료선교를 행할 것입니다. 또한, 여선교회 회원들은 선교팀을 위해서 4박 5일간 식사 봉사를 하며, 선물을 전하고 전도하는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를 앞두고,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거창하게 피지 선교를 가지만, 무엇을 위해서 이 선교를 가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떤 자세로 이 선교에 임해야 하고, 또 선교를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본문을 통해서, 선교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선교는 생명을 구하러 가는 것입니다.

중동 지역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은 조그만 국지전이 아닙니다. 창세기 14장 1절에 보면, 쳐들어온 나라들이 열거됩니다.(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 이 나라들은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한 나라들입니다. 땅 면적으로만 봐도, 강대국들입니다. 그런데 이 네 나라가 연합해서, 사해 근처의 조그만 다섯 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나라 안에 소돔과 고모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정착한 땅이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9절, 10절을 보면 강대한 네 나라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약탈당할 때 사람들도 함께 잡혀 갔는데 거기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잡혀간 것입니다. 이 소식을 삼촌인 아브라함이 듣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심하고 유하고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한 예로, 그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자기 아내 사래에게 “당신은 아리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내 아내라고 하면 내 목숨이 위태하니까 애굽에 가서 당신을 소개할 때, 내 누이라고 하시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창14:14-15)”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겠다고 군사를 모아서 전쟁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알던 아브라함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군인도 아니고, 그가 이끌고 간 군사들은 정식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질 게 뻔한 싸움입니다. 수만의 군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싸움인데 아브라함의 사병 수는 고작 318명입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마므레라는 곳에서 단까지 올라갔는데, 그 거리가 무려 200km입니다. 300여명을 이끌고 이 먼 거리를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먹을 식량이며, 무기며, 보통 준비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아브라함은 쫓아갔고, 잡혀갔던 롯을 구해왔습니다. 어떻게 승리할수 있었습니까? 창세기 저자는 전쟁의 내용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창세기 저자의 관심은 아브라함이 싸움에 나선 목적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잃어버린 조카의 생명을 구하는 목적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는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선교팀은 여기에 목숨 걸고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선물도 준비하고, 찬양도 준비하고, 말씀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행했을지라도 만약에,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선교는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같이 용사처럼 영적 싸움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생명을 구하고 영혼을 구하는 영적인 싸움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2. 선교는 사랑과 희생으로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구하고 영혼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구하는 데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사랑과 희생입니다. 미 국방부가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을 구한 4대 영웅을 선정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백선엽 장군입니다. 이분은 6.25 당시 다부동 전투를 이끈 장본인입니다. 당시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에 밀리고 밀려 낙동강까지 내려갔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마저 밀리면 나라가 공산화될 위기였습니다. 낙동강에 배치된 북한군은 2만 2천명, 국군은 3분의 1인 7천여 명입니다. 북한의 전차는 40대, 우리는 0대, 화력이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넘어갈 그 순간에, 이 백선엽 장군이 나서서 말합니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선두에서 돌격하겠다, 만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백선엽 장군의 결단에 군인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장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희생을 각오하니까, 군인들이 하나도 물러서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워서 낙동강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 전쟁에서 생명을 구하고 영혼을 구했습니까? 군사력입니까? 무기입니까? 사랑과 희생이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이끌고 나선 군사는 기껏해야 318명입니다. 강대국의 연합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승산이 없는 싸움인데 어떻게 이겼습니까? 바로 사랑과 희생입니다. 나가면 죽을 게 뻔 하지만 조카를 향한 마음에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많은 선물과 물품과 의약품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마음에 피지 땅 영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없다면, 구원의 역사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부족하고, 능력이 없어도, 뜨거운 가슴으로 영혼들을 사랑하면 거기에는 놀라운 생명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선교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두 사람이 맞이합니다. 하나는 18절에 나오는 살렘왕 멜기세덱입니다. 멜기세덱은 왕이라기 보다는 제사장에 가깝습니다. 멜기세덱은 승전한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9-20)” 20절에 보니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승리한 비결에 대해서 말합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승리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승리케 하셔야 승리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없이도 승리했다면 그건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이 승리하고 하나님이 없이 성공하는 건 축복이 아닙니다. 선교는 더욱 그러합니다. 선교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우리보다 앞서 행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보다 성령이 먼저 가셔서 행하셔야 진행되는 모든 일이 복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말씀을 소개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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