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이기고 합하는 자가 되라 (고전 1장 10-17절)-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분열을 이기고 합하는 자가 되라 (고전 1장 10-17절)-광림교회 정존수목사

미국 콜로라도 롱스피크 산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커다란 나무를 심었습니다. 400년 이상 오래된 나무였습니다. 벼락을 열네 번이나 맞았는데, 끄떡없었고, 수없는 태풍에도 견뎌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 나무가 어떻게 죽었는가 보니 조그만 딱정벌레가 나무에 들어왔습니다. 속을 파먹고 번식을 하는데 견고한 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 것입니다. 이 나무는 외부의 공격으로 쓰러진 게 아닙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니 결국에 죽은 것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내가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의 말씀은 고린도 교회가 은사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즉, 유능한 교인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이상하게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바로 분열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전1:11)”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나 있는데 분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분열을 이기고 합하는 자가 되기 위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마귀는 사소한 것으로 분열을 일으킵니다.

교회 내의 분열과 분쟁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린도교회도 세례문제로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1:12-13)”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거면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나는 바울 라인, 나는 아볼로 라인, 나는 게바 라인, 나는 그리스도 라인이라 합니다. 마귀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오른발 교회라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름이 왜 오른발 교회입니까? 고난 주간에 세족식을 하게 되었는데 의견대립이 생겼습니다. 한편에서는 오른발부터 씻겨야 한다고 했고, 다른 편에서는 왼발부터 씻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오른발부터 씻겨야 한다고 주장한 교인들이 나가서 교회 이름을 오른발 교회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깨어서 마귀의 궤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나중에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걸 가지고 분열하게 합니다. 거기에 순응하는 것은 마귀의 의도대로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상하고 감정이 날 때 “성령님 도와주세요.” 주님의 마음으로 이길때는 성령님이 기뻐하십니다. 평안이 임하고 신앙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를 계속 흔들고 분노하게 하고 분열에 뛰어들게 하는 것입니다.

 

2. 내가 먼저 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마음과 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 먼저 합하기를 힘쓰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먼저 합하는 게 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마음을 합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는 자라면 마음을 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상대방이 부족해 보여도, 대놓고 나무라지 말고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공동체에서 마음을 가장 많이 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대화, 특히 미성숙한 대화입니다. 미성숙한 대화는 하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대화는 생각과 의견이 다르지만 서로 간에 자꾸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교집합을 만든다는 것은 상대방이 이해가 되고,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고전1:10)”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대화가 잘 통하고 교감이 잘 되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대화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눈, 귀, 손, 발 모두를 두개씩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만은 하나만 만드셨습니다. 이는 많이 일하고,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듣되 말은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에 보니 듣는 것과 말하는 거의 황금 비율은 2:1입니다. 이 비율이 대인관계에서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듣는 데서 나아가서 맞장구를 쳐주는 것입니다. 최근 연예인 중 MC라는 분야가 뜨고 있습니다. 탁월하고 인기 있는 MC들을 보면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청이고, 다른 하나는 맞장구입니다. 좋은 MC들은 맞장구치는 기술이 탁월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나와 네가 하나가 되고 공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는 것입니다.

 

3. 목적과 사명 위에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비결은 내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서 있는 것은 사명의 목적을 가지고 중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사람이 모여서 일하다 보면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의 차이가 교회 공동체가 가진 목적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차이와 갈등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견이 갈리고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나뉘려 할 때 교회 공동체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세례에 따라 파가 나뉘고 분쟁할 사명의 본질이 무엇인가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바울은 자신이 사명이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라면 내가 세례를 베풀든, 남이 세례를 베풀든 서운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라면 내가 드러나지 않아도 좋은 것입니다.

교회에는 신앙의 핵심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분 따라 감정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10년, 20년을 믿었는데 감정 따라 살아간다면 그건 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따라 사는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무엇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내 기분과 감정이 상해도 이 일로 이해서 복음이 증거 되느냐? 만약에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나의 희생과 헌신이 묻힐 수도 있습니다. 상을 받기는커녕, 비난과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비난과 모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 된다면 희생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죽겠습니다.”란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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