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의 신앙 (마 24:32-44, 계 22: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마라나타의 신앙 (마 24:32-44, 계 22: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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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의 신앙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신앙) 
마 24:32-44, 계 22:20

 성경을 읽으면서 설마설마 하는 대목이 주님의 재림입니다. 제가 축도할 때, 예수님에 대해서 붙이는 수식어구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중요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이 있습니다. 초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심은 초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주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이단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시록 22:20절 마지막에 주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했을 때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대답합니다. 이 말이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이 마라나타의 신앙에 대해서 4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깨어 있는 신앙이 마라타나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마라나타의 신앙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잠에서 깨려면 알람이 필요합니다. 깊은 잠을 자다가도, 알람 소리를 듣고 깨는 겁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서 알람을 울리실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건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는데, 세월호 사고는 지금도 나라를 흔들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안전하다는 비행기가 실종 되고, 격추되고,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불안함을 느낍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열심히 살던 사람들입니다. 설마 내가 탄 비행기가 한 순간에 폭발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습니까? 내가 탄 배가 뒤집어 질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서 자꾸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고 또 고민하게 합니까? 우리를 영적으로 깨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예로 들면서 마지막 시대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24장에 죽 열거된 시대의 징조들, 난리와 난리 소문, 전쟁의 소문, 기근과 지진, 재난의 소식들, 불법과 거짓의 성행 등 이런 일들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이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주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십니다. 그럼으로 이런 징조들을 볼 때 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에 민감한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성도입니다.



2. 영적으로 잠들지 않는 신앙이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바로 영적으로 잠자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것은 무엇입니까? 38-39절에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죽은 이유가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8-39)”고 나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방주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방주로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은 것입니다. 38절에 그 원인이 나옵니다. 심판의 순간 직전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잠겨도 아주 푹 잠기는 것입니다.


 방주의 문이 열리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잠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일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잊을 정도로, 세상에 잠기고 세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세상에 푹 잠겨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잠든 영혼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3.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 있는 다섯 처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대의 결혼을 보면 신랑이 지참금을 들고 신부 집을 찾아옵니다. 신부 친구들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랑이 정한 시간에 오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 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련한 처녀 다섯입니다. 이들이 미련한 것은 기껏 기다렸는데 결국에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잘 기다렸고 결국 신랑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들의 등에는 기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부 친구들처럼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기다린다고 해서 모두 성도가 아닙니다. 등에 기름이 없으면 주님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등을 살피며 두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1) 먼저는 나의 기도의 불, 찬양의 불, 감사의 불은 켜져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2) 그리고 성령의 기름이 채워져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악하고 험한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험한 여정을 잘 통과하려면 우리 안에 기름이 채워져야 합니다. 바로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 기름이 부족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만 땅이 되어야 합니다.



4. 모이기를 힘쓰는 신앙이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제가 겨울이 되어서 벽난로에 불을 피고 있는데 불 피우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불을 피우고 꺼져버린 숯을 버리지 않고 모아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이 좀 약하다 싶을 때 이 숯을 넣으면 불이 쉽게 붙고 강력해집니다. 이처럼 과거에 뜨거웠다가 식은 신앙이라도 새롭게 불이 일어나는 신앙공동체에 속하게 되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고 나옵니다.
 

숯불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타오르는 나무도 혼자 있으면 불이 꺼집니다. 그런데 그 옆에 다른 나무를 기대 놓으면 꺼져가는 불이 나무들 사이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가 교회에 속해서 신앙생활하다 보면, 서로가 부담스럽고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사실은 저 사람이 있기에 내 신앙이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싫은 사람도 내 신앙을 살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하나되어 함께 믿음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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